[법조칼럼]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 교정자문위원

공무원시험 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공무원시험 자료사진 / 중부매일 DB

최근 아내가 공무원 승진시험에 합격하였다. 필자의 아내는 아이 셋을 낳자마자 뒤늦게 공무원에 뜻이 생겼다면서 홀연히 도서관으로 사라지더니 약 1년 만에 국가직 7급 공무원에 합격했던 시험의 귀재이다. 게다가 세 아이와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직장을 다니면서 틈틈이 공부해서 높은 성적으로 이번 승진시험에 합격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공직자들은 승진시험을 위해 본인에게 부여된 연차휴가의 대부분을 시험준비에 할애한다고 하는데, 필자의 아내는 고작 시험보기 전 4일의 휴가를 썼을 뿐이다.

이렇듯 필자의 아내는 시험에 매우 절륜한 스킬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시험장을 나서는 아내에게 고생했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얼굴이 반쪽이 된 아내는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말했던 것을 보면 스킬보다는 뼈를 깎는 노력이 수험 기술을 압도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시험의 기술 따위는 없고 상식을 뛰어넘는 노력이 결과를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같은 평범한 촐랭이는 중요한 합격을 하면 의례 호들갑을 떨 것 같은데, 아내는 "이번에는 좀 어려웠는데 내가 나를 입증해서 기쁘다" 정도의 쉬크한 반응을 보인다. 실은 그런 모습이 절대강자를 영접하는 듯한 느낌을 주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는 하다.

필자는 거의 평생을 시험과 함께 살아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 봐도 성공한 시험조차도 정말 지긋지긋하다. 시험은 언제나 등수를 매기고 당락을 결정하는데, 통상 그 결과에 웃는 사람이 우는 사람에 비해 훨씬 적다. 결국 시험은 소수의 행복에 다수의 슬픔을 당연히 내포한 것으로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행복관점에서 철저히 벗어난 불행의 사회장치이다. 오죽하면 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이 암송하는 기도에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며..."라는 내용이 있을까 싶다.

사실 어떤 시험들은 굳이 시험합격의 수나 등수를 정하기 위해 시험이 검증하고자 하는 목표와 크게 다른 단순 암기사항을 테스트 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고, 더 큰 문제는 단순한 지필시험으로 사람의 창의성이나, 영감같은 고도의 정신적인 능력치를 현재의 시험들이 측정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윤리시험이 개인의 윤리성을 측정할 수 있을지, 국어시험과 영어시험이 9급공무원의 공직 수행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어떤 선조가 개인저서를 몇 권을 썼는지를 묻는 국사시험이 수험자가 가지고 있는 우리 역사에 대한 긍지를 측정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우리는 단지 순서를 정하기 위해 혹은 당락을 가르기 위해서 시험을 보는 것은 아닐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시험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난관 혹은 자기 자녀의 학업이나 취직 등과 같은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역사학자는 시험제도가 한 국가의 흥망성쇄를 좌우하는 구조적인 변경을 가져오는 역사적이고 거시적인 문제로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조선시대에는 건국 초기 교육의 목적을 관리양성과 유교적 윤리의 보급에 두었기 때문에 유교경전에 관한 지식측정이 시험의 목표가 되었다. 유교의 보급은 초기 혼란스러운 국가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건국 초기 시험과목에 포함되지 않은 영역의 학문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어서 실생활의 유용성과 관련된 학문을 탐구하는 자가 드물게 되었다고 한다.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권택인 법무법인 충청 변호사·법무부교정자문위원

결국 과거시험은 생활의 유용성과 거리가 먼 경전 암기력을 확인하는 시험에 머물렀고, 선비들은 단지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암기위주 경전학습에 몰두하게 되어 조선은 격변기의 세계정세를 따라잡을 능력을 잃게 되어 쇄락하여 가다 결국 몰락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괴담같지만 매우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깟 시험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어쩌면 비약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필자의 아내가 승진 시험공부를 위해 필자를 외면하고 공부만 해서 필자가 뿔나서 툴툴거리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시험의 목적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혹은 서열을 정하기 위해 실시되는 시험은 그 폐해가 이득보다 막대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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