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 덕분에 종전 사람이 하던 일을 점점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의당 생활에서 오는 수고로움을 덜고 보다 여유있고 풍요로운 삶의 질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편리성 추구를 내세운 여러 제도나 시스템의 도입이 많은 이들에게 번잡한 수고와 불편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있다. 각종 신용카드 회사나 금융기관, 공공기관, 시외·고속 터미널 등 다중을 상대하는 곳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표전화 자동응답시스템(ARS) 서비스도 그 대표적인 애물단지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이 시스템은 관련 기관이나 회사의 각종 업무와 대민 관련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녹음한 뒤 전화를 건 이용자들이 번호를 선택해서 정보를 습득하게 하는 것인데 그 사용법이 여간 까다롭고 번거로운게 아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이용자들의 시간과 돈을 너무 낭비시킨다는 것이다. 이용자가 원하는 특정 정보에 이르기까지 거쳐야할 단계가 워낙 자잘하게 세분화돼 있다 보니 오랜 시간동안 통화하는데 따른 시간적·경제적 낭비가 막심하다. 그러니 급한 마음에 공중전화 같은 곳에서 전화를 했다가 정작 자신이 원하는 정보는 얻지도 못한 채 통화가 중단되는 것 같은 어이없는 경우를 당할 수도 있다.
 또 많은 정보를 청각에만 의지해 선택하게 하는 방식 자체가 유·소년이나 노령자에게 심각한 불편을 초래한다는 것도 문제다. 젊은 사람들이라도 예닐곱 개의 정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자동응답시스템은 부담스러운데 하물며 청각기능과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특정 연령층에게는 거의 접근불가능한 벽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나마 적잖은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도 정작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고 통화를 끝내야 할 때는 황당하기 그지없다. 기껏 몇 분동안 어렵게 번호를 선택해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곳까지 왔는데 해당 사항이 없다거나 다시 접속하라는 말을 듣게 되면 분통이 터지고 만다. 더욱이 대부분의 응답시스템에서 상담원과의 직접 통화가 가능하긴 하지만 번번이 통화중일 때가 다반사이고, 느닷없이 통화가 끊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회 전반에 자동응답 시스템이 정착된지 꽤 오래 됐음에도 이용자들의 원성이 가라앉지 않는 것은 이러한 불편함이 시정되지 않고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차례 촉구됐던 것이지만 자동응답시스템의 문제점은 당연히 개선돼야 한다. 114 안내에도 대표 자동응답 서비스 전화만 등록하는 최근의 추세를 감안할 때 이용자의 편리성과 정보 획득의 정확성을 높이는 노력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심각한 정보차단과 생활의 실질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특히 각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에서는 응답시스템의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한 인력보강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자동응답시스템은 해당 기관이나 개별 회사에게 인력 및 경비 절감이라는 이득을 제공할지 몰라도 이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물적·심리적 손해를 외면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손해야말로 명백한 전사회적 손실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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