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인물인 월남 이상재 선생(1850-1927)은 일제치하 시절 시민운동가, 종교인, 언론인으로 민족의 정신 고양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이다.목은(牧隱) 이색(李穡)의 16대 손자인 그는 1881년 박정양이 이끄는 신사유람단원으로 일본에 가면서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특히 그는 개화 독립운동에 앞장 서 1897년부터 윤치호 등 신진인사들과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토론회와 만민공동회를 통해 주권 사수를 외쳤다.이 때문에 치른 옥고는 그의 일생에 전환기가 됐다.감옥에서 그는 선교사들이 보내 준 기독교 서적에 심취,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출옥 이후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에서 민족의 지도자로 일생을 보냈으며, 만년에는 조선일보 사장으로 일했다.55세의 나이에 YMCA에 들어가면서 지도력을 발휘한 그는 젊은이들에게 불타는 민족애와 신앙을 심어 주면서 민족의 미래를 기약했다.또 YMCA 활동을 통하여 민영환과 같은 상류층의 애국지사들과 이승만, 윤치호와 같은 신진 지식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기회와 장소를 제공했다.특히 직업교육을 실시,한국 근대화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젊은이들에게 음악과 체육을 가르쳐 지덕체를 겸비한 인간상을 건설해 나갔다.일본계가 장악하고 있었던 조선일보 사장을 맡은 것도 조선일보가 강력한 민족지로 만들기 위해서였다.그는 한마디로 사상이 다르고 신념이 다를지라도 한마음으로 손잡고 나아간 현대사의 가장 존경할 만한 민족의 지도자요 그 목자였다.바로 당리당략을 위해 이전투구하는 오늘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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