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부터 물을 끌어올리는게 비단 양수기만은 아니다. 산과 들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산천초목은 봄이오면 지하의 물길을 잘도 찾아낸다. 뿌리로 부터 생장점에 이르기까지 십수m의 거리를 자력으로 물을 끌어올린다는게 신비롭다.
 나무 세포의 양수력과 잎새의 탄소동화작용이 결합하여 꽃봉오리를 내밀게 한다. 청주의 가로숲, 플라터너스도 예외없이 싹을 틔운다. 무자비하게 가지치기를 해대도 이 나무는 불사목(不死木)인양 무럭무럭 자라나 한 여름이면 둥근 숲을 이룬다.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앙탈대던 꽃샘 추위가 저만치 물러가고 봄의 전령이 청주 관문에 도착할 때면 꼭 생각나는 인물이 있다.
 지금부터 반세기전, 플라터너스 묘목을 심은 홍재봉(洪在鳳)할아버지다. 홍 할아버지는 올해로 90세인데 아직도 말하고 듣고 거동을 하는데 불편함이 없다. 마치 나무의 푸르름을 닮은듯 아직도 홍안이다.
 『 그때가 6.25가 막 끝난 1953년도 였어요. 강서면장을 할때 경찰서에서 플라터너스 묘목 1천6백그루를 얻어다 가로수로 심었지요. 청주~조치원길이 비포장이었는데 새끼 손가락만한 묘목을 길가에 심으니 제대로 자랄리가 없었지요. 아이들이 꺾어가고, 소장수들이 회초리용으로 꺾어가고 해서 뿌리를 제대로 못내리더라구요. 그래서 초등학교를 돌며 묘목을 꺾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했고 어떤 때는 지켜서 있기도 했습니다. 나무마다 명찰을 달아 주기도 했지요』
 홍 할아버지는 간선면장, 직선면장에 뽑히는 등 지방자치제가 처음 실시될 무렵 강서면장을 두번 지냈다. 면장으로서 행정력을 발휘한 덕도 있지만 오늘날의 가로수가 전국 대회에서 1등을 한 것은 나무에 대한 홍 할아버지의 애착 덕분이다.
 『 젊을때의 일인데 한번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3대독자인 네가 공부는 게을리 하고 술을 퍼마시느냐고 야단을 치는 바람에 술을 끊었습니다. 지금도 술은 전혀 안마십니다』
 건강비결을 넌즈시 알려주는 홍 할아버지는 지금도 일주일에 한번씩 부모산에 있는 부모님 묘소를 찾는 효자다. 산을 내려오는 김에 홍 할아버지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나이테를 함께한 플라터너스 숲을 둘러본다.
 봄이 오면 홍 할아버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가로수는 뾰죽히 잎새를 내밀며 인사를 한다. 나무사랑 정신과 더불어 아들, 손자뻘 되는 기자의 질문에도 꼭 존칭어로 대답하는 겸손함이 아직도 홍 할아버지의 건강을 지켜주는 비결인듯 싶다.
 나무의 성장과 함께 슬하에 5남3녀를 두었다. 이중에는 미국유학을 마친 아들도 있다. 플라터너스의 성장처럼 자식농사도 풍년이다.
 혼탁한 정치판에, 정치인의 으뜸 덕목이 치산치수(治山治水)에 있음을 홍 알아버지는 낮은 목소리로 말해 주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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