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한병선 교육평론가·교육학박사

oil in water/ pixabay
oil in water/ pixabay

칼럼을 전개하기에 앞서 질문을 하나 해보자.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공존(共存)일까? 상생(相生)일까? 비슷한 의미이다 보니 공존으로 답할 수도 상생으로 답할 수도 있다. 이유는 우리 삶에서 공존도 중요하고 상생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두 용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전자는 단순히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반면 후자는 둘 이상이 서로를 북돋우며 살아간다는 의미다. 적대적인 감정을 포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과도 관련성을 갖는 철학적인 개념이다.

#공존을 넘어 상생으로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다. 다만 이들 물질들은 통 안에서 공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특정 물질에 따라서는 공존도 가능하지만, 일정한 조건이 갖추어졌을 때에는 포화상태로 용해하여 섞이게 된다. 적당한 공존농도가 되었을 때 공존하던 물질이 서로 혼합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국가적인 관계로 확장시킨다면 상호간 평화공존의 관계가 만들어진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런 상황이 항상 상생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전쟁이나 갈등이 없이 관계가 유지되기도 한다. 예컨대 '평화공존'으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의 관계다.

반면 상생의 관계는 이보다 훨씬 다층적이다. 앞서 거론했듯이, 물질이 섞이기 위해서는 특정한 상황과 조건이 필요하다. 물질계에서는 이런 조건만 만들어지면 공존농도가 되지만 인간계에서는 훨씬 복잡해진다. 철학적인 개념인 음양오행으로 설명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상생은 서로 윈윈(win-win)하는 관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단순히 공존하는 관계를 넘어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를 말한다. 상생은 상극(相剋)의 상대적인 개념이다. 공존은 경우에 따라서는 상극의 관계에서도 가능하다. 남북한의 경우는 좋은 사례다. 지금까지 그랬다. 상호간에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군사적, 이념적 갈등을 지속해왔다. 북한이 도발하면 남한은 더욱 강경한 태도를 취했고 북한은 이에 호전적으로 맞서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서로 반목하고 불신하며 상호간의 발전을 저해하여왔다. 이런 속에서도 남북한은 공멸하지 않고 공존해온 형태다.

인류가 지향하는 가치는 상생적인 삶이다. 갈등과 반목이 아닌 개인과 개인이 서로를 존중하는, 국가와 국가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이런 인류의 목표는 '보편성'과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성은 국가나 민족들, 혹은 집단 간의 단순한 공존이 아닌 '상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공동선을 위한 상생 의식 필요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한병선 교육평론가·문학박사

가톨릭 사회교리서 '두켓(DOCAT)'에 의하면, "세계는 상호 의존과 필연적인 연대로 하나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세계의 모든 국민과 민족 사이의 상호의존 관계가 더욱 긴밀해져 가는 이 시대에 세계의 공동선을 적절히 추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민족 공동체는 현대의 임무에 부합하는 질서를 스스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을 공동체로 이해하고 개인과 민족의 차이를 관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즉, 다양성을 풍요로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일상 관계에서 필수 불가결한 진리와 연대성, 자유 등의 가치는 갈수록 서로의 관계와 의존성이 커져 가면서 세계적으로도 중요하게 되었다는 의미다. 위의 '보편성'이 의미하듯, 이런 권고는 인류가 지향하는 상생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는 인류가 지향해가야 할 상생의 삶에 비추어 우리 민족과 남·북간의 관계에서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