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다음 주면 두바이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조카내외와 가족 만찬을 했다. 대학은 러시아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한국에 돌아와서 H그룹에 입사하여 무역에서 오퍼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조용한 성격의 조카와는 달리 조카며느리는 서글서글하고 항상 웃는 낯이라 만찬 분위기가 더욱 화기애애했다. 대청호가 훤히 바라다 보이는 탁 트인 호반가 식당에서 형부는 중동지역에서는 먹기 힘들다는 생선 매운탕을 주문하며 한국에서의 맛을 추억하길 바랬다. 식사시간 내내 모두가 염려하는 마음으로 안전을 일러 주기도하며 필요한 것들은 미리 미리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낸 조카부부는 직장에서 오는 부담감도 클 터인데도 오히려 새로운 경험이 자신들의 발전을 위해 좋은 기회라며 애써 안심시켰다. 4년 후에야 돌아올 아들내외를 보내는 언니는 그곳에 가더라도 믿음생활은 꼭 하도록 부탁했다. 아직 신혼 중인 아들 내외를 보내야만 하는 언니의 야윈 어깨가 더욱 작게 와 닿다. 19세부터 디스크 진단으로 몸이 불편한 조카였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한 평생을 보낸 언니는 오히려 자식의 건강은 지켜주지 못한 안쓰러움에 늘 마음이 편치 못했다, 오로지 자식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뒷모습에서 어미의 간절함을 볼 수 있었다.

어릴 적 어머니도 늘 뒷모습만 보여 주셨다. 땟거리를 준비하느라 굽은 허리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빨래를 하고 걸레질 하고 밭을 매고 잠들기 전 엎드려 기도하는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연하다. 자식들마다 1차 대학시험에 낙방하여 낙심해 하는 오빠, 언니들에게 '걱정마라' '너무 애쓰지 마라' '다시 시작해 보거라' 다독이시며 간절히 기도하는 뒷모습은 자식들에게 더 큰 훈육으로 다가왔다.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는 뜰 안에 봉숭아, 채송화, 작약 꽃을 피우시며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환하게 하셨다. 손님을 위해 술을 빚느라 화덕에 불을 피우고, 손님에게 주안상을 대접하는 모습은 백자기와 같이 단아했다. 조물주는 가정마다 어머니라는 한 사람으로 하여금 헌신의 씨앗을 떨어뜨려 가정을 태동하게 하고 가정을 존재하게 했다. 나 역시 그 자리에서 그 한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어머니를 닮지는 못한다.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새벽 예배를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만나는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아저씨, 신문을 돌리는 사람, 우유를 배달하는 아주머니, 이름도 얼굴도 없는 뒷모습만 보게 된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이들의 실상을 보면서 겸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아니어도 남모르게 이웃을 돕는 사람, 내 뒤에 사용할 사람을 위해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이들이야말로 따뜻한 사회의 뒷모습이 아닌가한다. 이제야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이 되었나보다.

요즈음 세간에 갑질 논란으로 마음이 불편해 질 때가있다. 화려한 앞모습 뒤로 금수(禽獸)만도 못한 뒷모습이 적랄하게 공개되는 것을 볼 때마다 실망을 감출수가 없다. 숫자가 그 사람의 인격을 평가할 수 없고, 제 아무리 절세미인이라도 그의 행동이나 마음씨가 곱지 못하다면 그것은 메두사에 불과하다. 누구에게나 뒷모습은 그 어떤 것으로도 감출수도 꾸밀 수도 없는 참다운 자신의 모습이다. 눈을 감아도 더 뚜렷하게 보이는 어머니 자리의 모습이야말로 앞뒤가 똑같은 참모습 이지 싶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