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와 대선이 실시되는 올해 우리 사회에서는 의미심장한 정치실험이 진행중이다. 민주당이 현재 전국을 돌며 실시하고 있는 국민경선제와 한나라당의 시장·군수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이 그것이다.
 각종 선거의 후보선출을 위한 자유경선제도는 「하의상달」원칙을 실현하는 것으로 당내 민주주의를 진척시킴으로써 정치문화 수준을 현격하게 상승시킬 수 있다. 그러나 최고 권력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해왔던 한국 정치풍토에서는 꿈꾸기조차 어려웠던 만큼 이번 경선제도의 성패 여부는 장차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일단 지난달 29일로 끝난 한나라당 경선은 우리 정당제도가 자유경선이라는 내용을 수용하기에는 미흡한 수준임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아쉽다.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하면서 천명했던 당내 민주화 구호가 무색할 만큼 곳곳에서 경선 불복, 불공정시비가 일었으며 대부분 추대형식으로 후보자를 선출함으로써 「무늬만 경선」이라는 비판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경선 전후로 탈당했던 인사들이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거나 후보간 연대를 모색하고 있어 한나라당으로서는 심각한 전력 차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지난 18일 충주시장 선거를 시작으로 모든 시·군에서 치러졌어야 할 한나라당의 후보경선은 당분열에 대한 우려로 인해 일부 지구당 운영위가 추대 형태로 중앙당에 후보를 추천함으로써 청원과 음성 두 곳에서만 선거가 실시됐다. 또한 많은 지역에서 기존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선의 문제점을 들어 정치 신인들이나 행정 전문가들이 중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고 경선과정의 불공정성을 들어 탈당하는 후보들도 잇따랐다.
 이러한 잡음과 후유증은 자유경선제도 정착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적잖은 후보나 출마희망자들이 지적했듯이 경선과정의 공정성이야말로 경선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다. 대의원 선정과 기타 선거과정 전반에 걸친 투명성을 제고시키지 않는다면 「경선은 해봤자 손해」라는 통념을 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신인이나 행정전문가 그룹에 대한 문호개방 또한 정치인력 배출이라는 정당 고유의 기능 측면에서 신중히 고려돼야 한다. 당내 공헌도를 바탕으로 입지를 구축한 유력인에 맞서 정치신인이 대의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당내 지지도의 불균형을 상쇄시킬 수 있는 일종의 보완장치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과제들은 당내 민주화라는 선결조건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당원들의 의사를 민주적으로 수렴하고 합리적으로 제도화한다는 믿음이 전제될 때만 경선과정의 투명성도 기할 수 있으며 결과에 승복하는 아름다운 모습도 관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경선 실험은 당내 민주주의 없이 어떠한 결실도 거둘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재확인시킨다.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 소중한 첫 발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이번의 자유경선은 한나라당은 물론 한국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비싼 수업료가 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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