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통 '한결 같은 맛' 고집하니 손님까지 대물림
3대째 가업 이은 음식 철학…메뉴 단순화해 '맛'에 집중
새벽부터 영업개시 전까지 육수에만 몇시간 정성 쏟아
장학금·경로잔치·무료급식 등 소외계층에 나눔·배려 실천

리정 식당 조성영·조경숙 씨 부부 /신동빈
리정 식당 조성영·조경숙 씨 부부 /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아빠 손을 잡고 육개장을 먹으러 오던 꼬맹이가 자라 또 아들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식당의 주인과 함께 손님도 대물림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8일 오전 7시 청주시 청원구 내덕동의 작은 골목에 구수하고 얼큰한 육수 냄새가 퍼져나갔다. 냄새의 근원지는 올해로 60년을 맞은 청주의 오랜 맛집 리정 식당이다. 주방에서는 조성영(62)·조경숙(60·여)씨 부부가 나란히 사골 육수내기에 여념이 없다. 육개장과 설렁탕의 맛을 좌우하는 육수에 조 씨 부부는 가장 많은 정성을 쏟는다고 했다. 아침에 식당을 열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일도 솥에 불을 붙이는 일이다.

"육개장의 국물은 너무 맵게 하지 않습니다. 취향에 맞게 양념을 추가로 넣어도 충분하니까요. 모두에게 편안한 음식을 선보이는 것이 비법이라면 비법입니다."

조 씨 부부는 기본 소고기 육수에서 그치지 않고 소머리, 소머리뼈, 사골 등을 넣어 또 육수를 낸다. 새벽부터 영업 개시 전까지 육수에만 몇시간의 정성이 쏟아지는 셈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한 육수에 대파와 양념만 넣고 나면 비로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육개장이 완성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육개장에 들어갈 소고기는 일일이 손으로 찢어 넣는다. 고기에 칼집을 내면 맛이 떨어진다는 조 씨의 어머니 고(故) 홍기순 여사의 오랜 고집이 대를 이어서도 반영된 것이다. 또 음식의 맛은 손 맛이라고 자부하는 조 씨 부부는 몇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전 잔소리를 늘 품으며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정 식당 메뉴판 /신동빈
리정 식당 메뉴판 /신동빈

 

조 씨 부부는 지난 1988년부터 어머니의 뒤를 이어 30년째 식당을 운영해 오고 있다. 이들이 어머니의 뒤를 이어 식당 운영에 뛰어들었을 때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은 메뉴였다. 기존의 여러 메뉴를 최대한 단순화하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어머니의 손맛은 유지하돼 음식은 가짓수보다 다만 몇 가지라도 진짜배기 음식으로 대접하자는 조 씨 부부의 음식 철학이 담긴 것이다. 그렇게 정리돼 현재 리정 식당의 메뉴는 육개장, 설렁탕, 수육 등 3가지뿐이다. 메뉴가 적다보니 손님들의 고민은 줄어들었고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식당을 찾게 됐다고 조 씨 부부는 전했다.

리정 식당은 맛 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손님에게 건강을 함께 선물하고 있다. 당장의 장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대물림 식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긴 호흡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바람이다. 고심 끝에 조 씨 부부는 기존에 음식을 담던 그릇 1천개를 개당 1만6천원이나 하는 고급 뚝배기로 전격 교체했다. 일반 뚝배기와 달리 세재가 밸 걱정이 없는 코팅된 뚝배기를 사용해 사소한 부분에서도 배려가 담기면서 이어지는 손님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

리정 식당 전경 / 신동빈
리정 식당 전경 / 신동빈

 

청주의 맛집으로 소문난 리정 식당은 지난 2003년 대물림전통음식계승업소로 지정되면서 더 많은 유명세를 얻었다. 3대가 나란히 가업을 물려받아 한결 같은 맛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조 씨 부부의 아들 내외는 리정식당 본점에서, 딸과 사위는 죽림동에서 2호점을 개업해 운영하고 있다. 자녀가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하는 것에 긍정적이지만 맹목적인 대물림은 원치 않았다. 자녀들이 음식에 대해 배우겠다고 포부를 밝인 다음 조 씨 부부는 2년 6개월이 넘도록 청소와 배달만을 시켰다고 했다. 그 후에도 음식은 양념 만들기와 육수 내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정도가 다였다. 차근히 눈으로 배운 다음에서야 차근히 육수내는 법, 고기 삶는 법은 물론이고 음식에 대한 철학까지 어머니의 오랜 고집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재료를 아끼지 않고 손수 만들어 내놓는 음식만큼 특별한 비결은 없다는 배움 또한 자식들에게도 전달됐다. 그렇게 리정 식당의 한결 같은 맛은 대를 이어서도 주변이들과 함께 그 끈을 이어가고 있다.

"식당을 찾아주는 손님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늘 주변에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특별한 식당 홍보를 하지 않아도 더 알아주시는 것 같더라고요."

리정 식당의 육개장과 설렁탕 상차림 /신동빈
리정 식당의 육개장과 설렁탕 상차림 /신동빈

 

리정 식당은 청주대학교 후원의 집, 착한가게 충북 11호점 등으로 선정되면서 지역에서는 봉사 식당으로도 익히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조 씨 부부는 남 모르게 고등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을 기부하고 경로잔치, 무료급식 등으로 음식을 나누며 꾸준히 소외계층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조 씨 부부는 음식을 나누면 행복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맛을 지역 사람들과 함께 지켜내겠며 내일의 아침도 변함없이 손님맞이에 나설 것을 다짐했다.

"60년 전통의 맛을 백년, 천년까지 이어가도록 대대로 사랑받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달릴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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