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시 가금면 장천리 장미산(薔薇山·長尾山·長眉山) 산정을 둘러싼 둘레 2940.3m의 장미산성은 남한강 물길을 지키던 옛 산성이다.
 마을에서 봉학사까지 도로가 나 있어 승용차가 성밑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산성을 답사하는 진미는 역시 걸어서 올라가야 제맛이 난다.
 해발 337.5m의 장미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시야가 탁 트인다. 남한강이 굽이쳐 돌아가고 인근에는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와 김생사지(金生寺址)가 있다.
 도로가 덜 발달되던 고대엔 강물이 중요한 이동 통로가 되었다. 강은 물길 역할 뿐만 아니라 생활용수의 해결, 자연적 방어시설의 기능을 충분히 해냈던 것이다.
 삼국이 이 지역서 쟁패할 당시 장미산성은 누구라도 탐을 낼 만한 요충지의 성이다. 최근에 충주시와 충북대중원문화연구소(책임조사원 차용걸)의 지표조사 결과 산성에 대한 여러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냈다.
 트렌치(시굴구덩)를 4곳에 넣어본 결과 배수시설, 판축의 존재 등이 확인되었다. 장미산성은 전형적 내외협축성이다. 내외협축이란 안과 밖에서 동시에 돌로 쌓은 겹성으로 매우 단단한데 도내에서는 보은 삼년산성이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
 판축의 존재가 확인됨으로써 석성이전에 토성이 존재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키지만 성 전체를 발굴조사하지 않고는 토성의 존재 유무를 속단할 수 없다.
 석축 성벽 안쪽으로 2.7m~3.6m 사이에 석축 요(凹)형 단면의 측구(側溝)식 배수로 시설을 갖춘 것도 매우 특이하다. 성벽 안쪽의 물이 성벽을 압박하지 않도록 배수로를 만들어 빗물을 모아서 밖으로 흘려 보냈던 것이다.
 적군의 침입시 이를 저지하던 돌팔매(石丸)의 존재도 괄목할만 하다. 곳곳에는 계란 모양의 강자갈이 산재하는데 곳에 따라서는 석환을 비축하던 방형 또는 장방형의 석곽(石槨)이 있다. 5~10m의 간격으로 정연히 배치되어 있는 돌상자가 확인된 곳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산성의 주인은 누구였던가. 토기편을 보면 신라, 고구려, 백제 계열이 모두 출토되는데 고배(高杯)조각, 토기 뚜껑조각 등 대략 5세기경 백제지역의 특징적 유물이 위주가 되고 있어 아마도 한성백제 시기에는 백제의 성이 아니었나 추정된다.
 산성의 이름도 참으로 예쁘다. 「장미산성」을 굳이 영어로 번역한다면 「로즈 캐슬」이 아닌가. 여지도서에도 이를 「장미산성」이라고 표기했는데 영국의 국화인 장미가 우리나라에 도입되어 벌써 산성이름에 까지 등장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보다는 우리말의 음운변화에서 산성의 이름을 유추하는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말로는 성을 「잣」이라 했다. 따라서 성이 있는 산을 「잣 메」라고 했는데 이것이 「잔미」를 거쳐 「장미」가 되지않았나 하는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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