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의 위대성 여부는 그 인물의 역사적 성패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흔히 회자되는 「이기면 충신(忠臣)이요 지면 역적(逆賊)」이라든가 「패자(敗者)는 말이 없다」는 이야기들이 이같은 가설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승자가 패자를 제거한 이후 이들을 패륜아(悖倫兒), 또는 폭군(暴君)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는 지나간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후삼국 시대를 풍미했던 그 시대의 영웅, 궁예 역시 종국에는 도망치던 도중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보리를 훔쳐 먹다가 백성들에 맞아 죽었다고 야사(野史)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전 종영된 인기사극 드라마 「태조왕건」에서 등장인물 궁예는 왕건을 옹립하려는 반군세력에 쫓겨 나지만 산속에서 마지막으로 왕건을 만나 술 한잔을 나누고 『부디 성군이 되라』며 당부까지 한 뒤 장렬한 최후를 맞는 것으로 극작가가 묘사해 논란이 된 일도 있다.
 조선시대의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선생은 『역사는 대부분 성패가 결정된 이후에 기록되기 때문에 승자는 단점을 감추고 패자는 장점이 가려지게 마련』이라고 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 역시 『제왕이다 역적이다 함은 성패(成敗)의 별명(別名)이요, 정론(正論)이니 사론(邪論)이니 하는 것 역시 실은 과다(寡多)의 차(差)일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설(假設)이긴 하지만 조선시대를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만일 위화도 회군 이후 정권획득에 실패했다면 그 역시 고려시대에 반란을 일으켜 나라를 전복하려 했던 반군의 괴수(魁首)쯤으로 역사의 한페이지에 기록돼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는 것일까.
 2000년 8월 민주화보상심의위가 출범할 무렵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일시적으로 거꾸로 해석되는 역사는 반드시 재해석되게 마련』이라며 위원들에게 『억울한 사람을 역사 위로 끌어내 정당한 위상이 정립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후 80년 언론 통폐합으로 인해 강제 해직된 언론인들에 대한 민주화 운동 인정결정을 비롯, 지금까지 5천5백여명의 신청자중 1천5백여명을 기각하거나 보류, 또는 재심사했고 나머지 4천여명은 위원 9명의 만장일치로 명예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 후에도 보상심의위원회는 외관상 별 무리없이 민주화 운동 관련자들을 심의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89년 발생한 부산 동의대 사태는 도서관에 전경 5명을 감금해 놓고 농성하던 대학생들이 진압경찰에 대항해 시너를 뿌리고 불을 질러 경찰관 7명이 숨지고 11명이 중화상을 입었던 사건이었다.
 지난달 27일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는 당시의 부산 동의대 사건 관련자 46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결정을 내렸다.
 심의위측은 이의 근거로 「살인에 고의가 없었고, 발생한 결과가 중대하다는 것만으로 민주화 운동 관련성을 부인하진 못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아무리 대의명분이 뚜렷하다고 해도 이의 성취과정이 떳떳치 못하고 비합법적이라면 정당화될수 없음은 상식에 속한다.
 성경을 읽기 위해 초를 훔치는 것이 정당화 될수 없듯 말이다.
 때문에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의 이번 결정 이후 결정방식과 판단기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비판여론이 항간에 거세지고 있다.
 당시 치안유지를 위해 시위를 진압하다 순직한 경찰관들은 모두 국립묘지에 묻혀 있다. 그리고 이들은 지금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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