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중엽, 제(齊)나라의 맹상군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으로 부터 재상 제의를 받는다.
 이에 맹상군은 식객을 거느리고 진나라에 도착, 소양왕을 알현하고 값비싼 호백구를 예물로 진상하게 된다. 그러나 중신들의 반대에 부딪친 소양왕은 그를 그대로 돌려보낼 경우 후환을 우려해 은밀히 죽이려 한다.
 이를 눈치 챈 맹상군이 소양왕의 총희(寵姬)에게 무사히 귀국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자 총희는『내게도 호백구를 주면 힘써 보겠노라』고 말한다.
 이 소식을 들은 식객중 구도(拘盜)는 그날 밤 궁중에 잠입, 전날 진상한 호백구를 훔쳐 총희에 주고, 결국 소양왕은 총희의 간청에 따라 그의 귀국을 허락한다.
 맹상군이 서둘러 국경인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첫닭이 울 때까지 관문을 열지 못한다」는 수비병의 불허방침에 2차 위기를 맞는다.
 그러자 일행 중 계명(鷄鳴)이 인가(人家)에 달려가 첫닭 울음 소리를 냈고 곧이어 동네 닭들이 울어대자 병졸들은 눈을 비비며 관문을 열어준다. 소양왕의 추격병이 당도한 것은 그 직후였다.
 무릇 통치자가 되려면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고 그때마다 가신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래서 세상은 도둑질 잘하는 사람도 닭의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도 공존 여지가 있되 이들을 활용하고, 이들의 발호(跋扈)를 막는 것은 전적으로 통치자의 책임이다.
 몇해전 인기를 끌었던 사극 드라마 「용의 눈물」
 태종 이방원은 보위를 물려주기 직전 세종의 외가를 포함, 그 인척들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작업을 시도한다.
 훗날 세종의 찬란한 업적을 상기하면서 아비의 그같은 주변정리가 적절했고, 필요악의 조치가 아니었나 하며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통치자의 주변정리 형태는 역사속에서 무수히 등장한다.
 조선시대 정종이 즉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열다섯 왕자들의 머리를 깎아 절로 보낸 것이었고, 성종 역시 외숙이 값비싼 목재로 호화주택을 지어 민심이 흉흉해지자 그를 곧바로 처형했다.
 또한 조선시대 임금의 직계손으로 5대손 까지는 종친부에서, 왕의 친척과 외척은 돈녕부에서, 그리고 임금의 사위는 의빈부에서 관장하며 일체의 벼슬과 권력을 넘보지 못하게 했다.
 권력이 집중된 상황에서의 주변정리는 지금이라고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절실히 드는 요즘의 정치상황이다.
 정치란 국가의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국민들이 편히 살 수 있도록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당연히 통치자는 나보다 남을, 가족과 주변의 영달 보다는 국민을 위한 위민정치를 펼쳐야 한다.
 집권 까지의 과정이야 어찌됐든 일단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면 반대급부를 바라는 식객 등 주변을 정리하는 고독한 작업도 통치자의 몫이다.
 『부르터스 너마저…』를 외치며 최측근에 살해당한 로마의 장군이자 정치가 시저도 역사가들에게는 고대 서양의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던 사람이었다.
 그가 그릇된 야심을 품었기에 죽였다고 말하는 부르터스나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김재규의 변명은 어찌 그리도 흡사한가.
 김현철씨를 발목잡았던 의사나 김대중대통령에게 비수를 겨눈 최규선씨 역시 마찬가지다.
 대권을 쥐기까지에는 계명(鷄鳴)과 구도(拘盜)도 필요하지만 이후의 주변정리도 중요하다는 것을 역사는 교훈으로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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