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칼럼]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2018.06.14. / 뉴시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당 대표직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당사를 떠나고 있다. 2018.06.14. / 뉴시스

김경수(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인터넷 댓글로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의 배후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하지만 그는 김태호(자유한국당) 후보를 압도하며 경남지사에 당선됐다. 김태호는 '나 홀로 선거'를 선언하고 홍준표 대표의 지원을 거절하며 경남 곳곳을 누볐으나 도민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경기지사 선거에 나선 이재명(민주당) 후보는 형수에게 욕설을 퍼부은 녹음파일이 공개되고 여배우와 불륜 의혹도 불거졌다. 하지만 3선에 도전하는 한국당의 중진 남경필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김경수·이재명은 자치단체장으로서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흠결을 갖고 있지만 지역주민들의 선택을 받았다. 한국당에 대한 거부감을 넘어 아예 염증을 느끼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당이 6.13지방 선거에서 철저히 무너졌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도 11 대 1로 민주당 압승이다. 민주당은 국회의원 의석수로도 제1당 자리를 공고히 하게 됐다. 정통 보수정당이 총선·지방선거등 역대 선거에서 이렇게 처절하게 패한 적이 없었다. 부산·경남의 민심의 이반에 한국당 보다 국민들이 더 놀랐다. 당장 내년 총선의 셈법을 따져보면 지역정당으로 몰락한 한국당에겐 도무지 희망이 안 보인다.

정당이 국민적 지지를 얻고 영속성을 가지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이념, 인물, 기반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이 세가지 모두 잃었다. 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의 명맥을 잇는 한국당은 이념적으로 보수정당이다. 우리나라처럼 휴전선을 사이로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나라에선 보수정당이 확실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사회도 한국당에게 유리하다. 보수층이 두터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무너트린 인물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그는 보수 파워의 절정기에 있던 정치인이다. 하지만 그는 독선·불통·무능으로 임기도중 권좌에서 내려온 첫 대통령이 되면서 국민들에게 보수정권에 대한 회의감을 심어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달랐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긴장완화의 불씨를 지폈다.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젊은 층뿐만 아니라 중장년층에게도 어필했다. '한반도 평화'라는 거대한 담론은 최저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이라는 소득 주도 성장론의 부작용을 가볍게 삼켜버렸다. 청년실업률이 높아지고 저소득층은 수입 감소로 민생은 위축됐지만 '남북화해'라는 메가톤 급 메시지에 묻혔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를 통해 거대여당과 지방권력 장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더욱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펼칠 것이 틀림없다. 반면 입지가 더욱 좁아진 한국당은 미래가 안 보인다. 당장 책임론을 놓고 내홍(內訌)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다음 총선에서도 참패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당초 홍준표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 페이스북에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영어 문장을 띄웠다. 하지만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대표직을 내려놓더라도 다시 돌아오려고 할 것이다. 무엇보다 당내에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마땅한 대안도 없다.

결국 한국당의 최대 핸디캡은 인물 부재다.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다음 대선에서 구심점이 될 수 있는 '간판스타'가 없다는 것은 제1야당으로선 치명적이다. 이번 선거에서 홍준표는 존재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 작년 탄핵사태 이후 한국당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내에선 '정풍(整風)운동'으로 당을 개혁시키려는 움직임조차 없었다. 초·재선 의원들조차 치열한 자기혁신 없는 '웰빙정당'의 한계를 드러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한국당에겐 이번이 기회다. 당이 무너졌으면 신축에 준하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해야한다. 명망과 신뢰를 갖춘 외부인사를 영입해 비상대책위 성격의 당 쇄신기구를 만들어 간판, 사람, 조직 모조리 바꿔야 한다. 그래야 이번 선거에서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 바른미래당과의 정계개편도 논의할 수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강화된 권력기반과 높은 지지율을 앞세워 대북관계에서 지나친 양보를 하거나 소득주도성장론 같은 무모한 도박에 속도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보수야당이 힘을 잃어 집권여당의 독선과 독주를 견제하지 못하면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다. 한국당이 당 쇄신과 개혁을 통해 환골탈태(換骨奪胎)에 성공한다면 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 것이다. 하지만 '그 나물에 그 밥으로' 적당히 넘어간다면 다음 총선도, 대선도 전혀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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