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이명훈 소설가

얀 마텔의 베스트셀러 '파이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안 감독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 다음영화
얀 마텔의 베스트셀러 '파이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이안 감독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스틸컷 / 다음영화

영화로도 유명한 소설 '파이 이야기'는 동물원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파이'가 동물원을 운영하는 가정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멀리 이민을 떠나게 된다. 동물들도 실은 배가 난파되면서 배에는 결국은 호랑이와 파이만 남는다. 그러면서 발생하는 일들이 탁월한 상상력으로 펼쳐진다. 작가 얀 마텔은 동물원 및 동물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데 상식과는 정반대의 동물원이 생겨난지도 오래 되었다. 동물이 갇히고 사람이 구경하는 구조가 아니라 정확한 반대 말이다. 즉 사람이 갇히고 동물이 구경하는 것이다. 사진으로 봤는데 튼튼한 그물형 통에 관람객들이 갇힌채 맹수들의 틈바구니를 서서히 통과한다. 신선했고 갇혀 있는 사람들은 공포와 스릴 이상의 만족감이 있을 것 같았다.

역발상의 한 예이다. 이것 말고도 예는 무수하며 지금은 역발상이 창조적 파괴를 너머 지나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발상이란 말 자체가 귀하게 쓰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인류사에서 발상이 이루어지곤 했는데 통상 인류사는 고단하고 평범하고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의 연장이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속에서 발상 자체가 새로운 것인데 발상의 과잉 즉 인플레이션이 되었을 것이다. 발상을 아무리 해도 먹히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실패의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레드 오션에서 역발상의 개념이 신선한 테이프 커팅을 했고 어느 샌가 역발상의 인플레이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확률은 적지만 모두가 역발상에 뛰어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 전체가 일상이 될 것이다. 역발상을 이야기하는 자체가 공해이자 오염이 될 수 있다. 그러한 상황 속에 우리가 어느 정도 들어선 것 같다. 현대 사회를 '피로사회'라고 진단해 논리화한 학자가 있다. 그가 제시한 이유는 다른 것들이지만 역발상의 인플레이션 역시 피로감을 자아내는 요소로 보인다. 물론 역발상은 단순한 선택이 아니라 살인적인 경쟁이나 심각한 환경 속에서 유일한 생존 내지 성공의 길의 성격이 짙다. 그 방법 아니고는 길이 없기에 탁월한 지혜이기도 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들은 충분히 인정되되 우려되는 점은 역발상이 점점 심해지는 문화 현상에 대한 것이다. 그것을 둘러싼 세계의 구조 자체를 문제로 삼을 정도로 심각한 주제이긴 하다. 거기까지 다루는 것은 또다른 과제일 것이며 현재의 흐름이 문화적으로 과연 바람직한 것이기만 한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의 주류 흐름 중 하나가 역발상을 고무시키는 분위기로 봐도 오류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위해서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없거나 약하다. 역발상의 동기 또한 개인적이거나 세속적인 것에 대부분 국한된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질문으로 가혹하게 몰아붙인다면 역발상에 대한 추구들이 허무한 몸짓이 될 수도 있다. 본질적인 질문 앞에 빈곤하고 군색한 상태에서 당연한 듯 추구되고 회자되는 역발상 분위기는 앞에서 잠깐 언급한 이유만으로도 문제가 있다. 역발상 역시 발상이다. 발상으로도 모자라 역발상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의 사회 분위기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뇌의식 및 정서는 어찌될 것인가. 그 너머엔 무엇이 또 인류를 기다리고 있나. 이런 질문 자체가 묻혀 버리고 사유가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의 주류는 속도의 경쟁에 매몰되어 가지만 그 전체가 가리키는 방향이 과연 무엇인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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