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23일 오후 충북 제천 내토시장을 방문해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을 격려하고 민생 행보에 나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지역 명물인 빨간 오뎅을 시식하고 있다. 2018.05.23. / 뉴시스
23일 오후 충북 제천 내토시장을 방문해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을 격려하고 민생 행보에 나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 지역 명물인 빨간 오뎅을 시식하고 있다. 2018.05.23. / 뉴시스

 

"전면 쇄신하겠습니다. 변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기득권에 급급한 이익집단, 자신의 권력과 안위만 추구하는 웰빙정당, 비전도 대안도 없는 무능한 정당, 이제는 안됩니다" 벼랑 끝에 몰린 정치인의 호소가 비장하지만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궤멸한 자유한국당의 반성문이 아니다. 꼭 1년 전 당 대표 경선에 나선 홍준표 전대표의 출마선언문이다.

7년 전에도 똑같은 말이 나왔다. "서민 현실과 동떨어진 부자정당, 웰빙정당의 오명을 깨끗이 씻어버리겠다" 2011년 5월 당시 한나라당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의 취임일성이다. 12년 전엔 더 신랄한 지적을 받았다. "웰빙의 반대말, 일빙(ill-being)이란 말이 영어에 있다. 병든 삶 자체에 대해서 스스로 개혁하지 않고 병을 체념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일빙이라고 하는데, 한나라당은 일빙파티를 하는 '일빙정당'이라는 생각이 든다" 2006년 5월 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한 말이다.

한때 웰빙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느리게 살자는 기치를 내건 슬로비족(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물질적 실리와 정신적 풍요를 추구하는 보보스(bobos) 등도 웰빙이다. 삶의 질을 높이고 정서적으로 윤택하게 살자는 말이지만 '웰빙'이라는 말 뒤에 '정당'이 붙으면 부정적인 의미로 변질된다. 한없이 보신(保身)적이고 남이야 어떻게 살든 자신만의 행복만 추구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런 정당에게 나라의 운명을 맡기고 싶은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배부르고 게으른' 정당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이는 '웰빙정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된다. '웰빙정당'이 정치인의 반성문이나 가시 도친 비판에 꼭 들어가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늘 '웰빙정당'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정당이 있다. 이미지 변신을 위해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었지만 '웰빙정당'의 꼬리표는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 지난 10년간 보수정권아래에서 민주당은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흉내라도 냈지만 보수정당은 공천 때마다 계파 간 당권싸움과 기득권에 연연해 참신하거나 젊은 피를 수혈하는데 실패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2월 "들개처럼 처절한 싸움을 하겠다"며 야성본능을 얘기했지만 과녁을 잘못 맞췄다. 국민이 원한 것은 인적쇄신이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홍 전대표가 최근 페북에 "마지막으로 막말하겠다"며 "고관대작 지내고 국회의원을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 추한 사생활로 더 이상 정계에 둘 수 없는 사람, 국비로 세계 일주가 꿈인 사람, 카멜레온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변색하는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을 청산하지 못한 것을 후회 한다"고 했다. '웰빙정당'의 종결판이다. 보수정당의 진짜 병은 '설마병'인 듯 하다. 늘 말로만 후회하고 반성하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냄비안의 물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데 느긋하게 수영을 즐기다가 죽은 개구리도 '설마'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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