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전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포항지진의 영향으로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면서 책거리 등의 이유로 수능 오답노트와 문제집 등을 처분한 학생들이 공부거리를 찾기 위해 서점을 다시 찾는 해프닝을 겪고 있는 가운데 16일 청주의 한 폐기물 재활용 업체에는 수능대비 문제집들이 버려져 있다./신동빈
수능시험 후 버려진 참고서와 노트들 / 신동빈

지난 5일 서울대 공과대학은 교과과정위원회를 열고 고교에서 물리Ⅱ 과목을 이수하지 않은 학생들의 '물리학'수강을 제한하고 대신'물리의 기본'이라는 과목을 이수토록 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는 학부 신입생의 절반이 정상적인 수강이 어려울 만큼 '물리 소양 부족'현상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고육지책이라는 것이다. 내남없이 모두 인정하는 국내 최고 수준의 서울대 공대의 일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현상은 고교에서 물리를 배우지 않은 채 대학에 진학한 때문이다. 고교에서 물리Ⅱ를 가르치지 않는 것은 학생들의 선호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며, 그 까닭은 물리Ⅱ가 다른 과목보다 어려워 입시에 필요한 높은 점수를 받는데 불리하다고 알려진 때문이다. 2014학년도 수능부터 선택 가능한 과학 과목 수가 2개로 축소되면서 상대적으로 쉬운 생물이나 지구과학 쏠림 현상이 나타나 지난해 수능에서는 전체 과학탐구 응시자 24만4733명 가운데 물리Ⅱ를 선택한 응시생은 불과 2839명(1.2%)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마땅히 고교에서 배우고 올라왔어야 할 과목을 배우지 않았으니 대학 강의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어 수강 도중 강의를 포기하는 학생이 25%가 넘는다고 한다. 이번 서울 공대의 조치는 아예 고교 수준의 기초교육을 다시 시켜 대학 강의를 정상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입시제도 하나 바로 세우지 못해 고교 교육이 파행되고 대학교육이 왜곡되는 교육 현실이 실로 답답하고 한심스럽기 이를 데 없다.

학생들의 학력 저하 현상을 걱정하는 소리가 많아진것은 1990년대부터의 일이다. 대학가엔 '말귀를 못 알아듣는' 학생들에 관한 뒷얘기가 넘쳐나고 교수들의 한숨이 깊어진 것도 오래 전이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학생들의 독서량이 절대 부족 하다는 사실이다. 대학들이 경쟁적으로 필독서 목록을 만들어 공개하기 시작한 것이 이 때문이었다. 서울대가 '기초교육원'을 설치한 것은 수학능력이 부족한 신입생들에게 기초 교양 교육을 선행시키려는 것이었다. 지금은 전국 주요 대학들이 대부분 기초 교육과정을 운용하고 있다.

우리 교육은 그동안 치열한 '수능' 경쟁을 거쳐 입시에 성공했지만 '수능'이 모자라 강의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을 양산하고 있었다. 교육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기르는 일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정의를 고려하더라도 그 중요성을 재론하는 일은 어리석을 뿐이다. 학력 저하만이 아니라, 교실 붕괴, 교권 추락, 체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고, 도덕성의 실종에서 비롯된 온갖 사회적 병리 현상들이 모두 잘못된 교육과 무관한 것이 아님을 고려한다면 교육 문제의 해결은 무엇보다도 선행돼야 할 국가적 과제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그러나 교육의 병증을 알리는 경고음이 높지만 우리는 아직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공감대를 얻는데 이르지 못했다. 정부가 앞장서 추동해야 할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교육 문제에 관한한 아예 처음부터 본질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기껏 입시제도 개편 문제를 두고 크게 요동치고 있는 교육계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대통령령으로 '국가교육회의'가 설치되고, 산하에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 또 그 산하에'공론화위원회'를 두고 시민 4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이는등 의욕을 보이고는 있지만 교육문제의 본질과는 거리가 멀고 그러니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가 본질인데 '무엇을 평가하여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게 할 것인지'에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기껏 수능이냐 학생부냐, 수시냐 정시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것과 같은 지금의 논의로는 우리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할 수 없다. 가장 시급한 것은 우리 교육이 당면해 있는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히'특목고'를 폐지하고 입시 제도를 바꾸는 것과 같은 고식지계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위기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급선무다. 교육문제는 우방도 동맹도 없이 우리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위기의식도 없고 그러기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제대로 된 노력도 보이지 않는 교육현실이 북핵문제보다 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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