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이 세계 최강 프랑스와 당당히 일전을 겨룬 바로 다음 날 새벽, 마침 프랑스에서 낭보가 날아왔다.
 제55회 칸 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참가한 「취화선」이 영예의 감독상 수상 소식을 전해온 것이다.
 이로써 무려 98번째 메가폰을 잡으며 한국 영화사를 온몸으로 기록해온 임권택 감독은 팽생의 숙업을 풀게 됐다. 감독상 수상 발표 직후 「이제서야 멍에를 벗은 것 같다」던 소감은 바로 「국민감독」으로서 그가 걸머졌던 책무의식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임권택감독은 1955년 소도구 조수일을 시작하면서 영화판에 발을 들여놓았고 1961년 액션영화 「두만강아 잘 있거라」로 감독데뷔했다. 이후 40여년 동안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1년에 5편까지 연출해야 했던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드디어 자신만의 독특한 영화지평을 개척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지난 93년 「서편제」로 놀라운 흥행신화를 이룩하기 훨씬 전부터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해외영화계에 인지도를 높여왔다.
 81년 「만다라」를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진출시키고 86년 베를린영화제 본선에 「길소뜸」이 진출했으며 다음 해인 87년에는 「씨받이」로 강수연에게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었던 것은 이 과정에서의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이에 따라 전세계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그의 회고전이 열렸으며 감독평전이 출판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독 칸 영화제는 그에게 끝내 넘어서야 할 벽이었다.
 베니스, 베를린 등 다른 국제영화제와 달리 그에게 냉담했던 영화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세계 영화의 메카를 자처하며 콧대를 높이는 칸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의 위상을 전세계에 과시해야 한다는 원로감독으로서의 부담감을 가졌었던 것이다.
 임권택감독이 높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부담감을 불굴의 실험정신과 장인정신으로 극복하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지난 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처음으로 진출한 「춘향뎐」에서는 판소리를 영상화한데 이어 이번 「취화선」에서는 동양화의 아름다움을 스크린에 재현하는 등 젊은 감독조차 따라오지 못할 실험정신과 예술적 야심을 발휘했던 것이다.
 그런 만큼 칸 영화제가 준 감독상은 반세기에 걸친 임감독의 작품활동에 대한 전세계 영화인의 경의와 존경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이번 수상은 최근 몇년 새 국내영화시장의 폭발적 성장세를 바탕으로 세계영화계 전면에 부상한 한국영화의 위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반갑기 그지없다. 다양한 작품색깔과 형식실험으로 세계영화계에 이름을 알린 수많은 후배 감독들의 노력과 한국영화산업의 저력이 있어 임감독 개인의 영화적 성취와 상승작용을 하게 된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권택 감독의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은 호들갑을 떨어도 좋을만큼 영광된 성취임에 분명하다. 나이를 탓하지 않고 험한 길을 찾아간 원로감독을 좇아 젊고 역량있는 감독들이 치열한 미학적 개척을 통해 한국영화를 세계영화의 주류에 위치시키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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