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한국축구의 눈부신 발전과 변화에 눈과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비록 3대2로 석패하긴 했지만 세계최강 프랑스를 맞아 대등한 경기를 벌였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2001컨페더레이션컵에서 5대0이라는 수모를 일거에 씻은 낭보에 시민들은 환호했고 우리 응원단 '붉은 악마들'의 함성은 경기장과 길거리를 가득 채웠다.
 프랑스팀에 체력이나 전술에 있어서도 조금도 뒤지지 않았던 이번 경기는 박지성이라는 스타가 탄생했다. 세인의 주목을 별로 받지 못했던 그가 영국과의 경기에 이어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도 미사일 같은 통렬한 골을 터트렸다.
 마침 우리는 월드컵과 지방선거라는 국내외적인 행사를 동시에 맞고 있다. 월드컵 열기에 밀려 지방선거가 빛을 잃고 있다는 볼멘 소리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발상은 선거의 속성을 「경쟁」에만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선거문화는 경쟁과 더불어 축제문화로의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선거문화를 축제문화로 바꾸기만 한다면 월드컵이라는 인류의 축제와 우리의 선거축제를 접목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야말로 「그로벌」과 「로컬」의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그로컬리제이션」의 상승효과를 얻어 낼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변해야 산다」라는 본보의 올 주제처럼 선거문화 또한 변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선진국 처럼 돈 안쓰고, 지지자들이 후원금을 내고, 엘 고어 후보가 조지 W 부시 후보에 깨끗이 승복하듯 결과를 받아 드리는 수용의 태세가 아쉽다.
 프랑스와의 평가전에 경기종료직전 심판의 태도는 상당히 애매했다.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프랑스팀이 핸들링을 했는데도 우리에게 페널티 킥을 주지 않았다. 우리는 다소 억울한 처지였지만 그래도 심판의 판정에 따랐다. 경기장안에서 심판의 권한은 절대적인 고유권한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도 이러한 스포츠맨 십을 본받아 이번 지방선거를 페어 플레이로 장식했으면 한다. 지연, 혈연, 학연에 호소하는 패거리 문화부터 우선 청산하고 정책 및 인물대결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그다음으로는 비겁한 흑색선전이라든지 헐뜯기 위주의 네가티브적 선거문화를 퇴출시켜야 한다. 면전에서는 군말 한마디 못하면서 뒤돌아 서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험담을 하는 것은 대표적인 비겁의 선거문화다.
 출마자나 유권자 의식은 똑같이 변해야 한다. 입후보자는 몸달다고 해서 지키지도 못할 공약을 남발해서도 안되고 유권자는 무얼 바라서도 안된다.
 이러한 시대적 소명이 있음에도 우리의 선거문화는 불행하게도 과거의 잘못된 관습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출마자, 유권자 모두의 의식속에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악습이 또아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통계가 말해주듯 이번에도 불법, 탈법선거운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월드컵 손님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몰려오고 있는 판에 이게 웬 망신인가. 경제와 체육은 선진국이고 정치는 후진국이라는 평가가 나올까 우려된다.
 경기장안에서 심판의 판정에 따라 월드컵이 치러지듯 선거운동 또한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치러져야 보는 사람도, 선거 당사자들도 흥미를 느끼는 것이다.
 후보자들은 대의민주주의가 말해주듯 주민의 뜻을 대신 펼쳐주는 공복(公僕)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선거문화를 올바르게 바꾸는 의식의 전환대열 선두에 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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