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최익성 경영학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 뉴시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 / 뉴시스

필자는 인트라넷 결재시스템이 도입되는 시기에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온라인 결재시스템이 도입되기 전에는 결재인 또는 결재방이 있었다. 도장이나 사인을 했는데, 사원·대리급은 사인을 못하고 도장을 찍어야 했던 시절이다. 결재 시스템이 도입된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그래 이것이 그래 이렇게 효율적으로 일을 해야지, 역시 우리 회사는 앞서가는 기업이라니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 위에 계신 분들이었다. 온라인으로 결재를 올리면 함흥차사다. 결재를 받아야 일을 할 수 있으니 용기를 내어 전화를 드리면, 종이를 뽑아서 가지고 오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러면 똑같은 내용을 기존 형식의 한글파일로 만들어서 결재판에 넣어서 가지고 간다. 거기에 결재를 받고 임원 컴퓨터 앞에 가서 조심스럽게 "이걸 눌러주시면 됩니다."라고 시범을 보여드린다. 만약 반려하려면 '반려 버튼'을 누르기 전에 어떤 이유로 반려하는지 기록을 해줘야 한다는 것도 친절하게 설명을 한 후에 엄숙했던 임원 방에서 나온 기억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반려된 문서를 보면 당황스럽다. 이유가 없이 그냥 '반려'만 누르신 것이다. 일하는 방식은 시스템으로 바뀌지 않는다.

2018년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부터 근로시간 52시간이 시행된다. 노동부의 지침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발 빠른 기업들은 오랜 시간 적응을 위한 준비를 해왔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접근들이 단순히 인프라, 시스템, 프로세스, 제도의 관점으로 접근하는데 있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겠다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표면적인 것들만 바꾸고 있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다 보면 뭔가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가지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음의 영역이라는 것이 있으니 이 또한 어쩔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올 것이다. 앞서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바뀐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도 선배세대들이 조직을 떠나고 그 자리에 다음 세대가 올라가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20년 전의 변화 속도와 지금의 변화 속도는 비교할 수 없는 정도로 차이가 크다. 지금 당장 변화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는 결국 일 바라보는 태도, 함께 하는 일과 혼자 하는 일의 경계와 균형, 리더의 시간과 플레이어의 시간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적용이다. 일과 삶의 균형은 일은 대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더 철저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집중하고, 더 몰입하고, 더 명확하게 끝마치는 것,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주어진 시간에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최익성 경영학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
최익성 경영학박사·플랜비디자인 대표

조직은 일을 하려면 함께 모여서 회의를 해야 하기도 하고, 회의 결과를 실행으로 옮기기 위해서 때로는 혼자 숙고해야 하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이 사이에 방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때 먼저 생각해야하는 것이 리더의 시간과 플레이어의 시간이다. 리더는 시간을 쪼개 쓰는 사람이고, 플레이어는 뭉텅이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리더는 시간을 최소 단위로 쪼개서 사용하다 보니 플레이어의 시간에 간섭하게 된다.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위해서는 함께 하는 날과 혼자 하는 날을 구분하는 것이 좋다. 함께하는 날은 회의나 그룹 활동을 하고, 혼자 하는 날은 개별적 업무를 처리한다. 혼자의 날 리더는 미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플레이어는 중요한 과업을 긴 시간을 가지고 해결한다.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해서 시간의 단위를 잘게 쪼개는 것은 테일러식 접근이다. 현대의 지식근로자들에게는 개인에게 더 많은 시간 주어서 더 깊이 사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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