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갈다
먹을 갈다
  • 중부매일
  • 승인 2018.06.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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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관련 사진 / 클립아트 코리아
관련 사진 / 클립아트 코리아

천년을 묵은 빛이다. 무덤에서 발견되었다는 먹, 국립 청주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단산오옥은 우리 전통 먹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단산오옥으로 쓴 글이나 그림은 오래될수록 검고 빛이 바래지 않아 더 깊은 맛이 난다고 한다. 출토 당시의 사진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먹은 사용했을 선비의 머리맡에 두 동강난 상태로 있었다. 가장 좋은 먹을 단산오옥이라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는 고려시대 먹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천년의 먹 향기 단산오옥' 전을 보고 귀가해 장식장에 보관된 연적을 꺼냈다. 연꽃 봉우리 같은 몸체, 두 가닥의 연 줄기를 꼰 모양의 손잡이, 연잎을 말아 붙인 모양의 귀때가 있다. 몽우리 아래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있어 귀때와 함께 연적 구실을 하게 되어있다. 아쉽게도 물 따르는 부리는 깨어졌다. 언제부터 이 연적이 우리 집에 있었는지 기억에 없다.

서당 훈장을 하면 딱 어울리셨을 시아버님. 틈나면 붓글씨를 쓰고 고서古書를 즐겨 읽으셨다. 이 연적도 소반위에서 고졸한 멋을 풍기며 늘 함께했을 것이다. 시아버님을 존경하고 많이 의지 했었는데 왜 소원(疏遠)해졌을까? 아마도 청천벽력같은 남편의 진단결과가 나오면서 그리된 것 같다. 신혼 때는 아버님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도타운 정을 나누며 지내었고 시부모님은 맏며느리를 많이 의지하신다고 믿으며 20여 년 동안 살았었다.

하루가 다르게 까라지는 남편을 보며 시어머님은 울기만 하셨고 아버님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나와 우리 아이들이 투병 중인 가장을 보며 아픔을 견디듯 시부모님의 가슴도 피멍이 들 거라고 스스로 이해했다. 5년의 투병에 지친 남편은 서둘러 가족 곁을 떠났고, 상속문제로 시어른의 인감증명서가 필요해 말씀드렸더니 거절을 하셨다.

연적에 물을 담았다. 한 손에 쥘만한 알맞은 크기이다. 내친김에 벼루에 물을 따랐다. 몽우리 진 연꽃 모양의 연적 귀때로 물이 순하게 떨어진다. 먹을 갈 때는 마음을 다 잡아 갈아야 한다. 벼루에 물을 적게 따르면 먹이 잘 갈리지 않고, 너무 많이 따르면 먹 갈기가 조심스럽고 먹물도 흐려 붓글씨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

먹을 조금 갈았는데 팔이 아프고 호흡이 고르지 않다.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이다. 다시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마찰에 집중한다. 먹을 가는 일은 어쩌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먹향이 진하게 우러나오려면 장시간 갈아야 한다.

갈아진 먹물을 붓에 충분히 묻힌 다음 붓을 벼루에 훑어 먹물이 떨어지지 않게 한 다음 서툴지만 글을 써본다. 붓 끝에 먹물이 스밀 때의 느낌, 화선지위에 스미는 먹물의 기운을 참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먹은 벼루에서 갈린다. 자신을 없애면서 글씨와 그림을 그리게 한다. 어찌 보면 자신을 희생해가며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는 부모님과도 같다. 나 역시 자식을 키우는 어미로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어찌 헤아릴 텐가.

스스로를 갈아 글씨를 낳은 먹처럼, 뼈 빠지게 한 평생 농사를 지어 자식을 길러낸 시아버님처럼, 소임을 하다 귀때부리가 깨진 연적처럼, 그렇게 한 생애 살아가는 거라고, 마음을 넓혀 더 이해하라고, 고려시대 먹, 단산오옥이 내게 일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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