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귀농인 1호 군서면 원정근·김영숙씨 부부
7년 노력 끝 3천 여㎡ 하우스 농사로 부농 일궈

옥천군 군서면에서 부농의 꿈을 실현한 원정근, 김영숙씨 부부가 깻잎을 수확하고 있다. / 옥천군청 제공
옥천군 군서면에서 부농의 꿈을 실현한 원정근, 김영숙씨 부부가 깻잎을 수확하고 있다. / 옥천군 제공

[중부매일 윤여군 기자] 북한이탈주민이 깻잎 농사로 부농의 꿈을 이뤄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003년 탈북해 옥천군 군서면에서 8년째 깻잎 농사를 지으며 현재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인 정착을 돕는 멘토 역할을 해내고 있는 원정근(62)·김영숙(59)씨 부부.

탈북자인 이 부부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를 연상케 한다.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인 원정근 씨는 김일성정치종합대학을 졸업한 나름엘리트 출신이다.

30여년간 사병과 장교로 근무하며 집안에서 쓰는 생필품, 먹는 음식까지 나라에서 지원받으며 남부럽지 않은 중산층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일명 백두산 줄기라 불리는 항일투사 후손들 때문에 매번 승진이 밀리는데다 증조할아버지가 소작인을 부리던 자작농이었다는 출신 성분 때문에 더 이상의 발전을 기대하지 못하고 제대했다.

이후 녹록치 않은 생활 형편으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하루하루 고되고 힘든 생활을 이어오던 중 이곳에서 더 이상 희망은 없다는 생각에 탈북을 결심했다.

먼저, 가장 가까운 중국으로 가려면 250m되는 압록강을 맨몸으로 헤엄쳐 건너야만 했다.

장교 출신으로 수영 하나는 자신있던 원 씨와는 달리 전혀 헤엄을 치지 못하는 아내와 두 딸에게는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사투를 벌여야 하는 멀고도 힘든 길이었다.

먼저 원 씨는 길이 1m짜리 커다란 비닐에 바람을 불어 넣어 물에서 뜰 수 있는 공기주머니를 만들고 아내와 딸들의 몸에 묶어 강을 건넜다.

가족과 자신의 몸을 연결하는 끈과 가족을 뜨게 해주는 공기주머니는 이 세상에서 원 씨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생명선과도 같았다.

2003년 8월, 중국 땅에서 네 식구는 도와주는 사람 없어 험난한 고생을 인내해야 했다.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힘겹게 살아오던 중 다행히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과 연결돼 탈북 2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기관인 하나원 생활을 마치고, 주유소·골프장·제과점 등에서 밤낮없이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원 씨 부부는 우연히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영농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됐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강원도와 경남, 전남 등지를 돌며 영농 준비를 했다.

2011년 6월 연간 수확이 가능해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깻잎에 관심을 갖고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깻잎 산지로 유명한 옥천군 군서면에 정착했다.

7년 동안 밤낮없이 농사지은 결과 지금은 3천여㎡ 크기의 하우스에서 연간 9천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만큼 나름 부농의 꿈을 이뤘다.

지금은 얼마 전 결혼한 큰 딸과 사위, 아내와 함께 일본 여행도 다녀올 만큼 여유도 생겼다.

탈북 관련 단체에서 귀농을 꿈꾸는 다른 탈북자들에게 모범사례로 소개되며 지난해는 통일부장관이 원 씨의 집을 방문하기도 했다.

현재 군서면에는 원 씨를 모델삼아 귀농한 북한이탈주민이 9가구가 더 있다.

그 중 7가구는 한창 깻잎 농사 재미에 푹 빠져 사는 행복한 농사꾼으로 나머지 2가구는 설렘 가득한 초보 농사꾼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원 씨는 "이곳 군서면에 정착한지 10년도 채 되지 않아 성공한 귀농인이라고 주위에서 칭해주니 나름 보람은 있다"며 "하지만 여기까지 오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 이탈주민들이 농사를 배우고 싶다고 많이 찾아오고 있지만 단순히 생각할 수 없는 게 농촌생활"이라며 "후배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노하우들을 전달해 성공적인 정착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