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91세…소수민족 출신 中 군부 최고위직 대장 역임
한중 수교 막후 역할 생가 태성리 4년 전 흉상 건립
2004년 방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 예방

故 조남기 장군(왼쪽)과 후진타오 전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 중부매일 DB
故 조남기 장군(왼쪽)과 후진타오 전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 / 중부매일 DB

[중부매일 임정기 기자] 충북 청원 출신으로 중국내 '조선족 영웅'으로 불리우는 조남기(趙南起) 장군(전 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전국 위원회 부주석)이 17일(현지시간) 타계했다. 

청주에 거주하는 친조카 조흥연(72)씨에 따르면 조 장군은 중국 베이징에서 노환(향년 91세)으로 이날 타계했다.

고인은 중국군 최고위 계급인 상장(上將·대장)에 이어 당 중앙위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부총리급),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군수사령관 격), 군사과학원 원장직 등을 역임했다.

조선족은 물론 55개 소수민족을 통틀어 중국 정계 및 군부 최고위직에 오른 그는 조선족의 영웅으로 중국 인민출판사는 지난 2003년 조 장군의 일대기를 담은 '조남기전'을 출간 하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1927년 4월 충북 청원군 태성리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 조부인 조동식(1873~1949년) 독립투사를 따라 1939년 백두산 기슭 중국 지린성 융지(永吉)현 조선족 마을로 이주한 후 1945년 12월 인민군과 인연을 맺었다. 조부인 조동식투사는 3·1운동 당시 청원 강내면서 횃불시위를 이끈 혐으로 3년간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치른 항일 운동가이다.

조 장군은 중공군 사령부 작전처 장교로 1950년 6·25전쟁에 참전, 당시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彭德懷)의 통역을 맡으며 신임을 얻었다.

이후 그는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근무하다 60년대 지린(吉林)성 연변군구 정치위원(사단장급)으로 승진했다. 문화대혁명 당시엔 모함을 받아 홍역을 치르기도 했지만 이후 지린성 부성장에 올랐다. 

특히 그는 1987년 소수민족 최초로 총후근부장에 올랐고, 이듬해 20여년 만에 중국내 군대계급제가 회복된 이후 처음으로 상장 계급장을 단 17명 중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이다. 1998년 정협 부주석에 선출된 뒤 2003년 은퇴했다.

2000년 4월 정부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는 열흘간 체류하며 고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정·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났으며 고향 청원 생가가 있는 강내면 태성리를 찾았다. 

그는 또 2004년 6월 중국 국제우호연락회 최고고문 자격으로 방한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 하기도 했다.

지난 2014년엔 생가 태성리에 조부인 독립투사 조동식선생 동상 옆에 그의 흉상이 세워졌다. 당시 청주시와 청원군은 조부 동상과 그의 흉상제작에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다.

그의 조카인 조흥연씨는 이와 관련 "한·중 수교 과정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조남기 장군의 업적을 널리 알리고 재조명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흉상을 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조카 조씨는 "9일장 국가장으로 치러지는 삼촌 장례에 참석하기위해 21일 출국해 다녀올 예정"이라며 "비록 중국 국적으로 평생을 살았지만 작은 아버지는 뼛속까지 한국인 이었다"고 말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고 조남기 장군은 중국 공산당의 우수당원으로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충성한 공산주의 전사였다"며 "무산계급 혁명가이자 걸출한 민족사업 지도자였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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