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성범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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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초등학교 3학년인 손주녀석이 숙제를 마치지 않고 놀기만 했다고 엄마한테 꾸중을 들었다. 엄마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게임만 하다 앞으로 뭐가 될래?" 하며 아이를 나무란다. 아이의 무책임한 행동을 변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 가르쳐주어야 한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것이다. 일의 성패는 우선순위를 잘 정하느냐에 달려있다. 우선순위는 가장 중요하고 급한 것을 먼저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 판단력이 부족하여 우선순위를 정하는데 미숙할 수가 있다. 아니면 숙제를 하고 싶은데 몰라서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엄마는 아이를 꾸중하기전에 보충학습을 시켜주어야 한다.

혹자는 말한다. 최초의 학교는 가정이고 최초의 선생님은 부모님이라고 말이다. 무조건 엄마가 숙제를 마치지 못했다고 꾸중하는 것은 재고해야 한다. 또한 꾸중하려면 교육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그 방법이 미숙하면 한낱 잔소리에 지나지 않고 아이들에게는 마음의 상처만 남긴다.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은 사랑때문에 하는 잔소리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였다고 한다. 14세 안팎의 아이들에게 어머니 잔소리를 녹음한 음성을 30초 정도 들려주고 뇌의 활성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한 결과, 아이들이 잔소리 듣고 있는 동안 뇌가 사회적 인식처를 중단하면서 부모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또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는 교육적으로 전혀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녀의 주도성을 잃게 되며 수동적인 태도와 행동을 만든다는 것이다. 잔소리가 강해질수록 자녀는 오히려 집중력은 떨어져, 오랜 시간 공부를 해도 학습효과는 저조해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모가 잔소리를 삼키면 아이의 얼굴은 달라진다. 사랑이란 아이의 낯선 모습을 받아주고 아이가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하든 우선 고개를 끄덕여 주면서 수용하는 것이다. 어쩌면 날카로운 잔소리는 상처받기 싫어하는 부모님들의 생존전략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상처받을 이유도 의지도 여유도 없는 부모님의 조급함이 잔소리로 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잔소리에 아이의 영혼은 질식해 간다.

이성범 수필가
이성범 수필가

불현듯 일선학교에 있었을 때 학부모들에게 드린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부모님들이 나를 보고 잔소리를 했는데도 성적이 떨어진다며 하소연을 하듯 할때면 나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자녀들이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아왔을 때 설령 성적이 크게 떨어졌더라도 화를 내며 잔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녀를 꼭 안아 주며 사랑의 눈물을 보여주라고 권한 적이 있다. 누구보다도 가슴아파하며 속상해 하는 것은 부모님보다 이 아이 이기 때문이다.

잔소리가 진정한 사랑의 표현인가에 대하여 재고해 보아야 한다. 부모님의 쉼 없는 잔소리는 자신이 받아야 할 상처를 아이에게 떠넘기는 책임전가 행위요, 그것은 관심을 가장한 아이의 영혼에 대한 부모님의 공격행위다.

우리는 흔히 아이들에게 잔소리하고는 이렇게 말의 여운을 남긴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잔소리야' 라고 말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잔소리한다고 인식하지 못한다. 이제 부터라도 우리 모두 사랑의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잔소리가 아닌 서로의 생각과 뜻을 나누는 소통의 대화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우리의 삶은 더 행복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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