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힘들게 6.13 지방선거도 치렀으니, 이제 남은 건 오늘 저녁 포르투갈과의 한판 승부다. 온 국민이 간절히 바라는 사상 첫 16강 진출의 꿈을 드디어 이룰 것인가, 그 가슴 떨리는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객관적인 전력」면에서 포르투갈팀은 우리를 저만치 앞서있다. FIFA 랭킹 40위와 5위간의 거리는 그렇게 쉽게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매일같이 놀라운 장면들을 만들어내는 이번 월드컵은 우리에게 「축구공은 둥글」며, 「객관적인 전력이란 없다」고 말해준다. 42위 세네갈이 격침시킨 건 1위 프랑스호였고, 엊그제 일본 미야기경기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아르헨티나는 랭킹 2위였다.
 이같은 일들은 이제 더 이상 「이변」이라 불리지 않는다. 상위팀과 하위팀을 구분하던 전력의 차이가 최대한 좁혀짐으로써 나온 지극히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그만큼 우승후보, 전통의 강호라던 팀들이 맥없이 나가 떨어지거나 가슴 졸이는 신세가 된 사례는 이번 월드컵에서 차고도 넘친다.
 더욱이 강한 체력과 스피드를 앞세운 한국팀에게 고작 의미없는 부호쯤인 FIFA 랭킹은 아무 두려움도 주지 못한다.
 지난 10일의 한·미전. 1-1 무승부가 끝난 뒤 한국팀은 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던 공동취재구역을 아무 말없이 빠져나왔다. 국제축구연맹이 유감이라고 표현한 행동을 할 만큼 한국대표팀은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40위와 13위가 붙어서 무승부를 기록했다면 13위가 불만스러워하고 40위는 기뻐해야 할텐데 영 딴판이었으니 말이다.
 그처럼 한국국가대표팀의 기세는 하늘을 찌른다. 오늘 우리가 승리의 예감 속에 포르투갈전을 기다리는 건 강한 체력과 스피드를 바탕으로 짜여진 쫀쫀한 조직력과 함께 그같은 자신감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만의 하나 승리의 예감이 빗나가는 상황이 올지라도 우리는 「승리」의 쾌감에 몸을 떨어도 좋을 것이다. 오늘의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우리는 너무도 많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요즘 전세계 축구팬들은 지난 1년 반 사이 한국축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궁금해한다고 한다. 동네축구, 뻥축구, 생각 없이 냅다 뛰는 축구로 지적받던 한국축구가 어느 결에 세계 강호들과 나란히 어깨를 겨누고 당당히 승리를 챙기는 선진축구로 환골탈태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이 폴란드전 승리에 열광한 것도 그것이 단지 48년만의 역사적 첫 승이어서뿐 아니라 실력으로 일구어낸 승리라는 점 때문이었다. 어떤 팀을 만나도 더 이상 주눅들지 않는 우리 대표팀은 이미 국민들 가슴에 찬란한 승리의 트로피를 안겨준 것이다.
 거기다 자유분방하게 열광적이되, 자발적으로 질서정연했던 응원 열기 또한 2002 한·일 월드컵의 승자로 자부할 만하다. 우리가 이토록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국민들이었음을 자각하는데서 오는 이 소름끼치는 전율이야말로 우리가 만끽할 참된 「승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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