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부처도 돌아앉게 하다

고등학교 동창이 있다. 지금은 적도 기니에 파견되어 그곳의 중요한 건물을 짓고 있다. 그 친구의 아버지는 평생을 교육에 헌신하셨던 故 안봉석 교장선생님이시다. 안봉석 교장선생님은 단순히 친구 아버지가 아니었다. 내가 대학원 재학시절에 "자네는 정말 공부를 통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세상을 바꿀 수 없는 학문은 학문이 아닌 게야. 그저 자신의 영달을 위한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아!" 라고 하신 말씀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친구 아버님의 고향은 평양이었다. 6.25 때 남으로 내려와 교사가 되셨고, 자식 다섯을 낳아 기르셨다. 그리고 자신의 평생 소원이 자식들에게 자신의 고향에 데려가 선친의 묘에 인사시키는 것이라 말씀하시곤 했다. 그 그리움이 너무나 간절하셨던지 집에 자신이 고향에서 뛰어놀던 곳의 화가에게 일일이 설명하면서 그리게 한 그림 한 폭을 늘 걸어두셨다.

만일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오늘날 남북의 화해 분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이셨을까? 핵으로 철옹성을 구축하려던 북한이 갑자기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사진찍고, 싱가폴 야경을 감상하며 산책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을 목도하신 아버님은 뭐라하셨을까? '天地開闢(천지개벽)'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남북문제에 있어 매파와 비둘기파로 나뉘어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는 그 누구도 확답할 수 없으나, 현재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나왔고, 고립이 아닌 변화를 선택하려는 모습을 가지고 본다면 비둘기파의 주장이 보다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돌부처처럼 꿈쩍하지 않았던 북한이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치지도외로 하자. 다만 앞으로 이러한 분위가가 지속된다면 친구 아버님의 소망이 늦었지만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五燈會元(오등회원)』에 있는 고사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배득렬 교수
배득렬 교수

晋朝(진조) 때, 심오한 佛法(불법)을 지닌 道生法師(도생법사)가 廬山(여산)과 長安(장안) 등지에서 불경을 연구, 번역하는 저술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이 道生法師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자 法師께서 蘇州(소주)의 虎丘山(호구산)으로 가서 몇 개의 돌을 주어서 제자로 삼고 그들에게 『涅槃經(열반경)』을 강의하였다. 그가 강의한 불교 교리는 대단히 생동하고 치밀하였다. 法師께서 강의의 중요한 부분에 대하여 돌들에게 "내가 강의한 내용이 불경의 원의에 부합하는가?"라고 물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의 질문에 대해 "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群石皆爲點頭)." '頑石點頭'는 이 고사에서 나왔다.

道生法師의 말씀을 사람들이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진실에는 부력이 있다. 진실은 언젠가는 반드시 수면위로 떠오르게 된다. 道生法師의 『涅槃經(열반경)』 강의처럼 진리를 진심을 가지고 노력하다보면 돌도 고개를 끄떡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지 않는가? 이제 한국은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 하더라도, 북한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하더라도, 아니 북한 정권에 대한 신뢰가 없다 하더라도 이전의 답답한 논쟁에서 벗어나 실천적 입장에서 북한문제를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될 것이다. 훈풍 타고 온 좋은 소식이 꼭 실현되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