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들」의 함성이 지축을 울리고 있다. 가는 곳 마다 「대한민국, 짠~짠~짠, 월드컵 코리아...」함성이 초여름의 밤하늘을 가른다. 월드컵 16강의 분수령이 된 포르투갈전에서는 무려 1백50만의 붉은 악마가 광화문에서, 인천에서, 무심천 둔치 등지에서 집결하여 「필승 코리아」를 목놓아 외쳤다.
 그들의 붉은 T셔츠엔 붉은 악마의 영문 표기인 「BE THE REDS」가 새겨져 있다. 이를 해석하면 「붉은 색이 되라」이고 조금 더 확대 해석하면 「빨갱이가 되라」다. 「빨갱이가 되라」니 이 무슨 청천벽력같은 소리인가.
 좌,우 이데올로기의 극한 대립에서 눈치보며, 숨죽이며 살아왔던 민초들에게는 가히 헷갈리는 문화충격이 아닐 수 없다. 붉은 색만 봐도 꺼림칙했고 붉은 색이 많이 들어가는 그림이나 물체를 보면 주홍글씨인양 이를 기피하고 터부시했다. 그래서인지 책가방에 든 크레파스엔 늘 붉은 물감이 남아 돌았다.
 심지어 관에서는 현수막, 플래카드 등에 붉은 색의 사용을 일정부분 제한한 때도 있었다. 붉은색하면 정열이나 밝음 등 고유의 색감을 연상한게 아니라 「빨갱이」를 먼저 떠올린 것이다.
 월드컵 기간동안 「붉은 광장」이 여기 저기에 생겨나고 있다. 바로 붉은 악마들이 진(陣)을 치고 있는 곳이다. 물론 이곳의 붉은 광장은 볼세비키 혁명으로 피로 물들었던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과 다른 붉은 악마들의 응원 열기가 넘친 열린 문화의 공간이지만 이또한 「레드 컴플렉스」에 중독된 대다수 기성세대들에게는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하는 의아심을 자아내게 한다.
 부산, 대구 잔디밭 찍고 인천에서 열린 포루투갈전은 숫제 붉은 이불을 경기장 스탠드에 편듯했다. 그 붉은 이불은 쉴새없이 출렁거렸다. 연초록의 잔디와 붉은 이블, 그리고 황색빛의 우리 얼굴은 어느새 삼원색이 되어 인류 화합의 묘한 색깔을 연출해 냈다.
 이제 붉은 색의 망령을 씻어도 되나? 무려 반세기이상 레드 컴플렉스에 집단 중독된 우리로선 문화혁명과도 같은 붉은 악마들의 함성 앞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문자답하고 있다.
 사실 붉은 색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의 색깔이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제천 황석리, 충주 조동리 등지에서는 홍도(紅陶)라 불리는 「붉은 간토기」가 나온바 있다. 토기의 겉면에 붉은 색의 유약을 발라 구운 것이다.
 여기에서 붉은 색은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뜻을 갖고 있다. 고인돌 무덤방을 조사해보면 망자의 주위로 붉은 흙이 뿌려져 있음을 관찰할 수 있다. 벽사와 더불어 영생(永生)을 붉은흙을 통해 기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습은 유전인자를 타고 내려와 생활 습관에도 깊게 배어 있다. 동짓날 붉은 색의 팥죽을 먹는 것이라든지 장독이나 울밑에 붉은색 계열의 봉숭아, 맨드라미를 심어 악귀의 범접을 막았다.
 사내아이를 낳은면 금줄을 치는데 붉은 고추를 매달았다. 사내아이라는 표시와 더불어 붉은 고추가 잡스러운 것들을 쫓아내길 바랐던 것이다.
 이처럼 붉은 색은 의심의 여지없이 우리의 색깔이었는데 격동의 근대사 속에서 그 정체성을 잃고 특정 이데올로기 집단이 로고 색깔로 선점되는 바람에 우리가 의식적으로 쓰지 못하고, 설사 불가피하게 쓰더라도 매우 조심스럽게 취급했던 것이다.
 붉은 색은 분명 빼앗긴 색이다. 그 빼앗긴 색을 찾아온 장본인이 바로 붉은 악마들이다. 그 누구도 언감생심, 붉은 색을 로고 색깔로 삼거나 이와 연관된 명칭을 꿈도 못 꿨는데 붉은 악마들이 그 오랜 터부를 깨뜨렸다.
 정치판에서 잃어버린 색깔을 경기장에서 되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남북통일이 되면 레드 컴플렉스의 찌꺼기가 완전히 씻어질텐데 말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