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한판 흐드러진 축제를 즐기고 있다. 끝없는 함성과 폭발하는 환희, 온 나라를 들썩일 열광과 팽창하는 자긍심은 한반도를 패닉상태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런 한판 축제야말로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지난 1백여년의 근대사를 통해 우리는 국권침탈과 전쟁, 남북분단이라는 처참한 역사를 겪어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인지 지역갈등의 골은 국민들을 강퍅하게 했으며 끊어지지 않는 부패의 연쇄고리는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을 내팽개치게 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패배의식과 냉소, 비겁함의 장막은 이제 찢어졌다. 8강 신화를 만들어낸 축구국가대표팀의 노력에 힘입어 이제 우리 국민들도 마음껏 스스로를 믿고 격려하고 뿌듯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국의 모든 거리와 광장에 모인 4백여만의 국민들이 밤새 승리의 환희에 들떠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는 모습은 즐거운 광란이다. 근엄한 엄숙주의와 강요된 무표정의 굴레를 벗어던진 한국민의 얼굴은 삼바축제에 들뜬 브라질 미녀의 미소 보다 더 환하다.
 한국축구가 전국민의 지지와 세계적 찬사를 받을 충분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우리 국민들에게도 광란의 축제를 즐길 충분한 이유와 정당성이 있다. 한·일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경이로운 전진은 우리 역사에 처음으로 진정한 의미의 축제 한마당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축제에 관한 한 경험이 일천한 우리 국민들이 축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흔쾌히 확인시켜주고 있다.
 지금 전세계가 한국에 던지는 경이에 찬 시선은 단지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색의 옷을 입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장면에 압도돼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한 장면은 세계 역사 속에서 몇 차례 불행한 경험으로 기록된 바 있기 때문이며, 진정 놀라운 것은 강압적인 전제권력의 동원 대신 자발적인 흥겨움으로 무리를 이루되, 그 무리 속에 합리적 이성이 중심을 잃지 않는 열기인 것이다.
 최선을 다해 선수들을 응원하고는 자신들이 사용한 응원도구와 쓰레기들을 줍는 관중들과, 흐드러진 밤샘 뒤풀이 끝에 주변을 정돈하는 거리응원단의 모습이야말로 자랑할 만한 우리네 본성이다. 그처럼 많은 인파가 몰려 나왔지만 이성의 고삐가 풀린 채 과도한 일탈과 혼란 대신 곧 평정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존경심을 배가시킬만 하다.
 하지만 이쯤에서 잠시 냉정을 되찾으려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처음으로 겪는 이 축제가 자칫 카오스의 국면으로 헝클어질 수도 있음을 며칠간의 경험이 일깨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때때로 뒤풀이 현장에서의 과도한 감정분출은 주먹질로 이어졌고, 차량들이 적잖이 파손됐거나 사람들이 다쳤으며, 쓰레기는 산더미처럼 쌓였다. 이러한 모습은 즐겁고도 흥겨운 잔치 한마당을 중심없는 광란으로 몰아갈만큼 우려스럽다.
 한·일 월드컵에서의 한국팀 선전은 우리에게 어떻게 축제를 즐겨야 할 것인지를 과제로 남기고 있다. 승승장구하는 한국팀처럼 우리 또한 멋들어진 마무리를 이루어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