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는 우리에게 짜릿한 승리를 선사했다. 48년동안 눈 앞에서 번번이 놓쳐버렸던 1승의 쾌감은 물론이거니와 16강 진출과 함께 강호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꺾으며 8강, 4강이라는 미답지에 첫 발을 내딛는 감격도 누려봤다. 비록 요코하마까지 가지 못했고 3·4위전서 아쉽게 졌지만 그 어떤 것도 이번 월드컵 동안 누렸던 승리의 희열을 훼손하지 못할 것이다.
 동북아 대륙 끝에 붙어 온갖 종류의 외침과 내환으로 편안할 날이 없었던 한반도에 찾아온 이 승리는 실로 감격스러웠다. 언제나 「그들」의 전유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승리가 폴란드와 포르투갈,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 전통의 강호들과의 맞대결을 거쳐 우리에게 안겨오던 순간의 벅찬 감동은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승리의 경험은, 한국축구를 월드컵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 또한 새로운 인식의 지평으로 인도하기에 충분했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생각했던 세계축구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우리 선수들의 기량이 그것을 가능케했다. 이번 월드컵 경기의 초점은 축구 자체가 아니라 한국민들이었다는 뉴욕타임스 보도도 이같은 측면을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천지에서 우리는 비로소 숙명처럼 떠안고 있던 패배와 체념의 장막을 찢어버릴 수 있었다. 우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철썩같이 믿고, 강력하게 승리를 염원할 때 달디 단 승리의 열매가 우리 것이 된다는 경험이야말로 전쟁과 분단, 분열의 현대사 속에서 절망의 유전자를 계승했던 한국민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깨달음을 제공했던 것이다.
 여기에 전통의 강호들이 쩨쩨하고 비굴하게 궁시렁대거나 주변에서 변죽을 울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예상치 못한 소득이었다. 명예로운 전통을 지켜왔던 축구중심국들이 아시아 변방에서의 거친 도전에 놀라고 당황해서 판정시비를 걸고 넘어지며 음모론을 거론할 때, 승자의 적당한 대처와 여유를 고민했던 경험도 실로 짜릿했다.
 그런 만큼 뜨거웠던 6월의 경험은 앞으로 펼쳐질 한반도의 미래가 결코 과거와는 같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리게 한다. 온 국민이 하나되어 나누었던 승리의 쾌감과 희열, 뜨겁게 솟구치던 스스로에 대한 떳떳함과 자랑스러움 등은 어떤 권력이나 외부의 훼손에 맞서 온전히 스스로를 지켜낼 것이기 때문이다.
 재차 강조하는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월드컵 이후 펼쳐질 삶의 현장에서 승리를 거두는 과제가 남아있다.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돌파해내면서 승리를 쟁취했던 태극전사들의 기백과, 한점 흔들림없는 성원으로 승리를 함께 엮어냈던 광장의 열기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 일상에서의 승리도 월드컵 4강의 신화가 그랬듯 결코 꿈은 아닐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은 「승리하는 삶」에 대한 다부진 의지를 최대한으로 증폭시켜 놓았다. 패배를 예감한 핑계거리를 찾는 대신 어떻게 승리를 즐길 것인가를 고민케하는 이 초유의 경험이 우리 국민 각자의 삶에서 구체적인 결실로 나타나고 국가적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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