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최고 가게] 1. since 1936 제천 '대흥문구'

제천시 의림동에 위치한 '대흥문구사'는 1936년 '대흥상회'로 시작해 82년간 한 자리를 지켜왔다. 박래섭 사장이 1982년 직원으로 들어와 1991년 인수하면서 지금의 '대흥문구센터'로 간판을 바꾼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수십년의 역사를 이어온 가게에는 '특별함'이 있다. 경기침체 속에서 성공의 단맛과 실패의 쓴맛을 맛보며 지역의 울타리 안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새 기획 '충북의 최고 가게'에서는 충북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最古)의 가게이자 최고(最高)의 가게에 주목하고자 한다. 오래된 가게의 장수비결, 그리고 그 가게를 고집스럽게 운영해온 주인장의 땀과 눈물과 열정을 만나본다. 오래된 가게가 더 오래 가길, 최고의 가게가 되길 응원한다.  / 편집자

"대흥문구는 우리나라 기업의 역사와 같이 합니다. LG화학이 럭키치약 개발해서 팔 때에도 우린 여기서 장사했으니까요."

제천시 의림동에 위치한 '대흥문구'는 1936년 일제강점기 때 문을 열어 82년째 영업중이다. 제천에서 두 곳뿐인 목조 2층 건축물로, 초록색 간판이 시선을 잡아끈다.

"1년에 공책(노트)만 수십만권씩 팔았었죠. 제천시내 학생들 90%는 여기 와서 노트 사갔으니까."

박래섭(64) 사장은 70~90년대 호황을 이뤘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미소를 띠었다. 당시에는 제천지역 매출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이름 그대로 대흥(大興), 크게 성했었다.
 

제천 '대흥문구' 박래섭 사장이 필기도구 등 문구류 판매대를 정리하고 있다. / 김용수

대흥문구는 문구류뿐만 아니라 휴지, 성냥, 세탁세제, 건전지, 주류 등 생활용품도 판매하는 일종의 잡화점으로 시작했다. 문구류만 취급한 건 80년대 초반 이후다.

"1972년 제천 의림지에 홍수가 나서 붕괴된 적이 있고, 73년과 78년 유류파동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가게에 물건이 없어서 못팔 정도였대요. 사재기처럼 물건을 다 사간 거죠."

박 사장은 매형이 운영하던 대흥문구에 1982년 직원으로 취직해 10년간 일하다가 91년 '사장'이 됐다. 가게를 인수한 뒤 90년대에는 직원 7~8명을 둘 정도로 매출이 상승곡선을 이어갔다.

"옛날에는 이 건물 2층이 예식장이었대요. 그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죠. 바로 옆에 제천군청, 제천경찰서가 있어서 사무용품은 죄다 여기서 사갔어요."

제천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대흥문구는 강원도 지역까지 손을 뻗혔다. 제천의 철도교통 여건을 잘 공략한 것이다. 대흥문구는 82년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강원도 영월, 평창, 정선, 태백 등으로 도매 공급을 진행했다. 문구류를 박스 포장해 제천역에서 철도소화물로 부치는 일이 박 사장의 몫이었다. 일주일에 한두번씩 60㎏짜리 박스 15개를 발송했다.

"포장작업하느라 밤 12시까지 일을 했어요. 낮에는 포장한 박스들을 제천역으로 옮겨서 발송했는데 차가 없으니까 자전거로 여러번씩 옮겼어요. 문구류가 무거워요."

제천시 의림동에 위치한 '대흥문구사'는 1936년부터 82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천에서 단 두곳뿐인 목조 2층 건축물이다. / 김용수 <br>
제천시 의림동에 위치한 '대흥문구사'는 1936년부터 82년간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제천에서 단 두곳뿐인 목조 2층 건축물이다. / 김용수 

대흥문구는 부지 140평(463㎡), 건물 내부 50평(165㎡)으로 문구사로서는 작지 않은 규모다. 90년대에도 일찌감치 매장에 에어컨이 있었고, 진열대는 깔끔하게 정리가 돼있었다. 박 사장이 인수 당시 서울 '동방프라자'를 벤치마킹해 내부를 꾸몄다. 사람들이 몰렸고, 문구업계의 현대화를 리드했다.

"지금 인테리어가 90년대 초 모습 그대로예요. 이 가게에 학생들이 100명씩 들어와있었어요. 90년대에만 해도 에어컨 있는 곳이 은행이랑 저희밖에 없었거든요."

대구에서 건설회사를 다니다가 82년 문구사에 발을 담그게 된 박 사장은 건설사의 업무 스타일과 완전히 달라 애를 먹었다. 일은 많았고, 업무는 세세하고 꼼꼼해야 했고, 고단했다.

매일 아침에 7시반에 출근해 밤 10시가 돼야 퇴근할 수 있었고, 자정 12시를 넘기는 날도 잦았다. 365일중 명절 때에만 쉬는 '연중무휴'였다. 지금은 오전 8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문을 닫는다. 일요일에 쉰다.

밤샘근무에 타지역을 넘나들며 승승장구하던 대흥문구는 '과거형'이 됐다. 지금은 아내(장연화씨)와 둘이 운영하면서 인건비만 근근이 유지하는 수준이다. 매장을 빼곡하게 채웠던 까까머리 학생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단골들도 나이를 먹었다.

"소비패턴이 바뀌면서 학생들이 문구류, 학용품에 관심이 없고, 사무용품도 전산화되면서 수요 자체가 1/10로 줄었어요. 다이소, 편의점, 대형마트에서도 다 문구류를 팔고 온라인에서도 파니까 우리가 설 자리가 없는 거죠."
 

대흥문구 박래섭 사장은 수십년간 수기로 거래장부를 작성해오고 있다. 누렇게 변하고 낡은 매출장부들이 대흥문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김용수

박 사장은 그러면서 "문구사는 이제 사양산업"이라고 나직하게 말했다. 

"장사가 안되는 것은 경제도 어렵지만, 필연적으로 산업이 발전해가면서 흥하는 업종이 있고 망하는 업종이 있잖아요. 지금 문구사가 사양길인거죠. 문구사는 개발도상국에서 잘되는 업종 같아요."

하지만 그는 지금의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산업의 흥망성쇠 사이클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가게를 운영한다기보다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만들어놓은 가게라서 접지를 못하는 거예요. 내 땀으로 일군 가게니까 ."

장수 운영 비결로는 양심적인 경영, 좋은 상품 판매를 꼽았다.

"이마트에서 401강력본드를 3천900원에 판매하는데 우리는 3천원에 팔고 있어요. 롯데백화점 건전지가 우리 것보다 더 비싸요."

1936년부터 82년의 역사, 앞으로 100년 역사를 채우는 것에 대해서는 욕심내지 않았다.

"일본은 100년 이상 된 오래된 가게를 일부러라도 이용하지만, 우리나라는 편리한 걸 선호하다 보니 오래된 가게를 찾지를 않아요. 아쉬워요. 한때는 100년 가게나 대물림 가게를 만들어보고도 싶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녹록지 않네요."
 

대흥문구 박래섭 사장은 수십년간 수기로 거래장부를 작성해오고 있다. 누렇게 변하고 낡은 매출장부들이 대흥문구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 김용수

계산대 위에는 손으로 가지런하게 써내려간 매출장부가 놓여있다. 날자별로 거래처 관리, 외상매출 등을 꾹꾹 눌러 기록해놓은 대흥문구의 역사이자, 자산이다. 박 사장은 연도별 매출장부 수십권을 한켠에 모아두고 있다. 

"수기 장부가 불편하지만 익숙해요."

박래섭 사장은 대흥문구를 '오래된 장부'에 비유했다. 장부 안에는 가게의 흥망성쇠가 들어있고, 자신의 땀과 수고로움의 흔적이 녹아있고, 애착 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하는 애틋함이 있기 때문이다.

박래섭·장연화 부부가 매일 함께 일하면서 대흥문구를 지키고 있다. 결혼한지 올해로 35년 됐다./ 김용수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