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순간 긴박한 '생·사' 기로…매순간이 골든타임
공중보건의료 경험 인생 전환점…국내 응급의료체계 필요성 느껴
삶과 죽음의 생생한 기록 현장…의료진 작은 실수 환자에 치명적
19년째 밤낮없는 응급실서 근무…책임감 갖고 위급상황 진료 임해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중부매일 연현철 기자] "아악! 으아악!"

22일 오전 8시 오른쪽 발이 피로 범벅된 60대 남성이 119구급대원들에 의해 다급히 응급실로 들어섰다. 응급실은 환자가 내지르는 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고통을 참다 못한 환자가 연신 소리를 내질렀다. 소리만으로 의료진은 그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예감할 수 있었다. 간호사와 응급의료사 등이 배드에 달라붙어 환자의 맥박 등을 체크했다. 곧바로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가 뛰어와 환자의 부상부위를 살폈다. 올해로 19년차를 맞은 베테랑 김상철(46) 과장이다. 골절상으로 의심되는 환자의 상태와 다음 필요 진료 등을 차트에 적은 뒤 의료진에 넘겼다. 김 과장의 지시와 차트를 확인한 의료진들은 곧바로 배드를 옮겨 진료실로 향했다. 뒤이어 또 다른 환자가 들어왔다. 잔뜩 인상을 쓴 채 배를 부여잡고 응급실로 들어선 여성 환자였다. 그는 환자의 배 여기저기를 눌러보며 상태를 파악했다.

이렇게 이날 오전에만 질병, 외상 등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는 50명이 넘었다. 응급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제서야 의료진들은 연신 마른 세수를 했다. 여기저기서 간호사들의 한숨 소리도 섞여 나왔다.

"매순간 다양한 상황들과 마주하게 되는 응급실은 전쟁터입니다. 화장실 조차 사치라고 느껴질 때가 많죠.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몸이 녹초가 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배움이 있는 것 같아요. 응급실은 의사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하거든요."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위급한 상황이 잠시 마무리됐지만 김 과장은 다시 차트를 살피며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다. 김 과장은 복통을 호소하는 50대 여성부터 다리 골절상을 입은 60대 남성까지 수십명의 환자들을 다시 꼼꼼히 살폈다. 그가 환자들을 이처럼 시도때도 없이 살피는 이유는 응급실에서 만큼은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수없이 반복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 과장이 몸담아 일하는 응급의료센터에는 전문의 11명, 교수 8명, 간호사 60명, 응급의료사 15명, 간호조무사 10명 등 100여 명의 의료진이 환자들을 지키고 있다. 김 과장의 근무는 주로 주간(오전 9시~오후 6시), 야간(오후 6시~오전 9시)으로 나뉘어 짷여지지만 주말의 경우 24시간을 쉼없이 진료할 할 때도 빈번하다.

의료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음과 생명의 갈림길 앞에 서는 환자와 생사를 함께 나눈다. 특히 김 과장은 정확한 진료와 골든타임을 강조했다. 그런 그가 애초부터 응급의료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은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공중보건의로 일했던 경험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응급의학에 있어 인력이나 시설, 장비 등이 여러모로 부족했던 때였죠. 특히 응급환자의 경우 골든타임을 놓치면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고 싶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했던 김 과장은 아직도 지울 수 없다는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트럭 전복사고로 20대 운전자가 숨진 일이었다. 김 과장은 벌써 10여 년이나 지났지만 당시의 기억은 여전히 머릿 속을 멤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사고로 골절과 대장출혈 등 상태가 위독했던 환자가 죽기 전 부모를 애타게 찾고 '살려달라'며 절규했다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그 역시 최선을 다해 치료에 임했으나 야속하게도 골든타임을 놓친 환자는 끝내 숨을 거뒀다. 아직도 생생한 환자의 얼굴과 목소리는 그에게 국내 응급의료체계의 필요성을 각인시켰고 전공마저 응급의학으로 이끌었다.

김상철 충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과장은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것이 이곳의 임무"라고 강조했다./신동빈
김상철 충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과장은 "전쟁터 같은 응급실에서 환자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것이 이곳의 임무"라고 강조했다./신동빈

"어렸을 적부터 과학자가 꿈이었습니다. 의사도 생명과 치료에 꾸준히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이 어릴 적 꿈과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쌓이는 경험과 동시에 연구가 발맞춰 나아가야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그는 세계 3대 인명사전으로 꼽히는 '마르퀴스 후즈 후 인 더 월드(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 2018년판에 등재될 정도로 우수한 연구 업적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김 과장은 한국형 자동차사고 심층조사 및 응급실 손상환자 심층조사 연구를 통해 자동차의학 및 손상 예방 등 응급의료체계 관련 다수 SCI(E)급 논문을 게재하는 등 응급의학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환자를 돌보는 충북대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지난 2004년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된 이후 충북 도내 유일의 상급 종합병원이다. 센터에는 응급중환자실, 응급병실, 응급 방사선실 등이 마련돼 있으며 임상분야에 걸쳐 넓은 진료 영역을 가진 의료진들이 24시간 항시 대기하고 있다. 말 그대로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위독한 중증환자에 대한 진료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다. 하지만 교통의 편의성 등으로 가벼운 타박상을 입었음에도 센터를 찾는 환자들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그는 중증환자에 몰두해야 하는 의료진들의 업무과중은 불가피한 실정이라고 전했다.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권역응급의료센터 의료진들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신동빈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김 과장은 환자를 가족처럼 대해야 하고 봉사한다는 생각으로 일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쌓이다보면 감정소비가 많아지고 그로인해 의료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김 과장은 의료진의 작은 실수는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과 책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고 설명했다. 무거운 어깨를 견디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밤낮없는 응급실에서 꺼져가는 생명의 불씨를 살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응급환자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합니다. 의료진이 업무가 많아 피곤하다 할지라도 생명 앞에서 어찌 쓰러질 수 있겠어요. 환자들이 겪었던 아픔을 지워주고 희망을 선물하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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