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만난 스님은 "상고암 석간수가 달천의 뿌리"

비로산장
비로산장

[중부매일 이지효 기자] 충북학연구소는 충북 재발견 사업의 하나로 달천(달래강) 유역의 잠재된 유·무형의 문화자원을 발굴·재조명하는 '달래강 123 인문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한다.

'123'은 보은 속리산 천황봉에서 발원해 청주시와 괴산군을 거쳐 충주를 돌아 남한강 본류와 합류하는 구간이 '123km'라는 점을 고려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자연과 문화유산이 어우러진 삶의 터전 달래강이 그 대상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명승의 재발견, 문화유산의 가치 재조명, 사는 이야기 발굴, 예술적인 표현과 활용방안 등을 담을 예정이다. 이러한 작업은 달천을 바라보는 또 다른 인문학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오는 11월까지 진행되며 워크샵, 현장탐사, 전시회, 보고서 제작 등이 추진된다. 중부매일과 공동기획으로 진행되는 '달래강 123 리포트'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정리하고 해석하는 작업으로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이 맡아 총 20회에 걸쳐 연재한다. / 편집자

 

# 속리산에 들어온 사람들 이야기

비로산장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밤새도록 물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잠을 잔다. 이곳 비로산장은 김태환 이상금 부부가 1965년 들어와 개척한 산장이다. 방마다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김태환씨가 쓴 것이 많고, 철기 이범석, 거산 김영삼 같은 정치인이 쓴 것도 있다. 철기의 글씨는 유곡수성(幽谷水聲)이고, 거산의 글씨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 '그윽한 골짜기에 들리는 물소리', 비로산장을 표현했다.

이곳에서 인상적인 것은 서각이다. 문구가 '도불원인인원도 산비이속속리산(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이다.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이 도를 멀리 하고, 산은 세속을 떠나려하지 않는데 세속이 산을 떠나려 하네" 그리고 마지막에 최고운 선생 시라고 새겼다. 이게 과연 최치원의 시일까? 자료를 찾아보니 백호 임제(白湖 林悌: 1549-1587)의 시다.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14권 '문장부(文章部)' '시예(詩藝)'에 보면 백호가 속리산에 들어와 중용을 800편이나 읽고 이 시구를 썼다고 한다.

비로산장은 지금 김태환 부부의 막내딸인 김은숙 화백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릴 적 추억을 잊지 못해 산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화백이다. 아버지가 트럭으로 8대나 되는 모래를 실어와 집을 지었지만, 이제는 낡아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시설 개보수를 해야 하는데, 허가를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 비로산장에서 출발해 천왕봉에 오르다

은폭위에 자리잡은 상환암
은폭위에 자리잡은 상환암

다음날 비로산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중간에 상환암(上歡庵)과 학소대를 보고, 배석대를 지나 상고암(上庫庵)을 찾아갈 예정이다. 그것은 달천 발원지로 언급되는 상환암 은폭과 상고암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상환암은 1977년 법운(法雲)대선사에 의해 중창됐다. 중창비에 보면 상환암은 숨겨진 폭포(隱瀑) 위에 자리 잡은 신령스런 땅이고 성역이다. 그리고 그 물이 청계천(淸溪川)이다.

상고암은 천왕봉으로 오르는 산길에서 왼쪽으로 300m쯤 떨어진 곳에 있다. 상고암에는 거북바위가 있고, 석간수가 있고, 마애불상이 있다. 절 뒤 전망대에 올라가면 비로봉에서부터 신선대, 청법대, 문장대를 지나 관음봉에 이르는 파노라마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이곳 상고암 석간수가 달천의 발원지로 여겨져 왔다. 절에서 만난 성중(性重)스님도 모든 학자가 다 인정한 사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천왕봉에 오르려면 백두대간 능선에 이른 다음 남쪽으로 900m 정도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한다. 천왕봉 정상에는 해발 1천58m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이 천왕봉 아래로 지하수가 흘러 1천20m 지점에서 샘으로 솟아난다는 게 '달래강의 숨결' 탐사팀의 주장이다. 그리고 이 샘이 유로종점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발원지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천왕봉에서 은폭을 지나 세심정에서 합류하는 물길보다, 신선대에서 금강골을 따라 비로산장으로 내려와 세심정에서 합류하는 물길이 더 길고 멀어 보인다.


#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바위능선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바위능선은 속리산 최고의 절경이다. 그것은 바위가 기기묘묘한 형상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속리산은 골산(骨山)이다. 그런데 천왕봉은 두드러진 모양의 바위가 없다. 멀리서보면 완만한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산을 오르는데도 어디 한번 숨을 몰아쉴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 바탕에 넉넉한 흙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이나 동양에서 물과 흙은 생명의 근원이고 어머니다. 그러므로 속리산의 어머니는 천왕봉이다. 나는 천왕봉에서 문장대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볼 때마다 어머니 천왕과 아버지 문장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 있는 비로, 입석, 신선, 청법이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것은 이들 봉우리가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비로봉은 상고암에 이르러서야 물길을 드러낸다. 그것은 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샘을 찾았기 때문이다. 물이 바위 아래로 스며들 경우, 물은 계곡에서야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로봉과 입석대 사이는 특이한 형상의 바위를 여럿 볼 수 있다.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머리 없는 부처님, 거북이, 원숭이, 코뿔소 머리로 보인다.

입석대는 말 그대로 선바위다. 4면비처럼 생긴 직육면체의 바위가 바위들 위로 우뚝 서 있다. 입석대는 천왕봉과 문장대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입석대와 경업대는 임경업 장군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신선대는 신선이 노닐던 장소라는 뜻이다. 신선대에 이르면 길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똑바로 가면 청법대를 거쳐 문장대에 이른다. 왼쪽으로 내려가면 경업대가 나온다.


# 물길 찾아 경업대를 지나 금강골로

경업대 관음암
경업대 관음암

신선대 정상 옆에는 속리산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신선대 휴게소가 있다. 휴게소 앞에는 해발 1천26m 신선대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나는 휴게소 운영자에게 물어본다. 이곳에서 물은 어떻게 구하느냐고? 그랬더니 저 아래 계곡 쪽으로 관을 묻어 물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선대 아래 지하에 수원지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그곳을 발원지로 볼 수는 없다. 인위적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이 솟아야 발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원지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우리 같은 인문학자들의 딜레마다. 신선대에서 경업대로 내려오는 길은 암릉이다. 경업대에 이르러서야 바위에서 물기를 확인할 수 있다. 경업대 아래에서 샘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샘은 300m 떨어진 관음암에 있다. 이 샘 때문에 이곳에 관음암이라는 절이 세워질 수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샘물을 불로장생의 약수 또는 장군수라 부른다. 그렇다면 관음암 샘물을 달천의 발원지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관음암은 또한 기가 모이는 곳이라 해서 최고의 기도처로 여겨지고 있다. 관음암은 1971년 선암(仙巖)대선사가 중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곳 관음암에서는 금강골 파노라마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는 금강골을 따라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물길을 만나는 것은 금강골 휴게소에 이르러서다. 그것은 길이 능선을 따라 나 있기 때문이다. 금강골 휴게소에서는 사람이 생활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는 국립공원 규정상 휴게소에서 숙박을 하는 게 금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들 휴게소 운영자들은 출퇴근을 한다고 한다.

금강골 다음에는 비로산장을 지난다. 지난 밤 하루 신세를 진 산장이다. 현재 속리산 내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비로산장 앞으로는 시원한 물줄기가 폭포수처럼 흐른다. 이제 속리산의 물은 겉으로 모습을 드러낸 채 세차고 당당하게 흘러간다. 다음 행선지는 세심정이고, 목욕소고, 상수도수원지다. 수원지에서 잠시 숨을 고른 달천수는 법주사를 지나 사내리로 흘러간다. 그리고 언젠가는 종점인 충주 탄금대에 이를 것이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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