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강전섭 수필가

연분홍 꽃잎이 하르르 떨어져 내린다. 그리움의 오월이 낙화처럼 날린다. 오색 물감을 대지 위에 마음껏 풀어놓던 오월이 가면 봄도 어느새 멀어지리라. 봄볕에 시든 앵초 꽃잎이 졸고 있다. 아마 빛바랜 꽃잎을 떨구며 봄을 보내는 중인가 보다. 뜰팡에 꽃이 피고 지며 잔상을 남긴다.

앵초는 푸른 이끼 낀 아담한 돌확 아래서 조용히 피어난다. 마치 호젓한 산길을 홀로 자분자분 걷는 새악시를 닮은 듯하다. 가녀린 꽃대궁에 매달린 다섯 갈래 화관이 봄바람에 살랑거리면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꽃은 은근한 매력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언제 보아도 질리지 않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꽃이다.

활짝 핀 하트 모양의 꽃잎이 정겹다. 꽃잎을 바라보노라면 연인을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울려 퍼지는 듯하다. 봄꽃으로 앵초처럼 다양한 종류와 색상을 가진 꽃도 드물다. 앵초는 화려하지도 향기가 진하지도 않다. 눈에 거슬리지 않는 잔잔한 자태와 색감이 친근함을 더해준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아린 슬픔을 지닌 꽃처럼 보인다. 내가 이 꽃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앵초는 나에게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만 같다. 이 곡은 애잔한 첼로의 중저음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음악이다. 그리움을 가슴에 묻어둔 사람이 즐겨듣는 음악이리라. 끊어질 듯 이어지는 선율이 고음으로 차오르면 슬픔의 격정이 절정에 닿는다. 꽃은 그리움을 떠올리고, 음악은 그리움을 전한다. '자클린의 눈물'은 그리움이다. 가슴 저리도록 애절한 선율이 귓전을 울리면 아련한 추억 속 누님이 그립다.

앵초꽃이 필 때면 꽃처럼 고운 누님이 떠올랐다. 담장 너머로 언뜻언뜻 모습이 보일라치면 어찌나 마음이 콩닥이던지……. 어느 날은 까치발로 담장을 잡고 기웃거리다 용구새가 내려앉는 바람에 어른에게 혼쭐이 난 적도 있었다. 그런 누님이 어쩌다 가까이 다가와 나의 등을 토닥이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유년기의 마음을 온통 분홍빛으로 젖게 한 누님이었다.
 

꽃노을이 지는 오월이었다. 차일을 치고 무쇠솥 뚜껑에 기름칠 냄새가 진동하던 날, 누님은 곱게 단장하고 나타났다. 신부의 얼굴이 앵초꽃처럼 오월의 햇살에 빛났다. 누님은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신랑 뒤를 따라 꽃가마에 올랐다. 새색시를 태운 가마가 동구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담 너머로 지켜보며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담장 아래 돌 틈에 핀 앵초 꽃잎이 봄바람에 떨어지고 있었다. 서러움에 겨워 지는 꽃잎을 발로 짓밟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날 가마 속에 앉은 누님은 봄날 앵초꽃처럼 그렇게 눈앞에서 멀어져갔다.

봄날 뜨락을 환히 밝히던 앵초의 모습이 삼삼하다. 앵초 꽃잎에는 풋풋하던 시절의 아련한 그리움이 가득하다. 한 송이 꽃으로 추억을 더듬는 시간이다. 앵초꽃이 지던 날 시집가던 누님이 그립다. 예전 그날처럼 앵초꽃은 스러지고, 떨어진 꽃잎에서 시집가던 누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지금은 어디에서 곱게 늙어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앵두꽃을 닮아 이름 붙여진 앵초,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지는 꽃잎에 나름의 의미가 있음을 뉘 알랴.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길목을 서성이며 시든 꽃잎을 쓸어낸다. 꽃이 진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다. 또 다른 잉태를 기다리는 즐거움도 있으리라.

앵초 꽃잎이 봄결에 흩날린다. 오월이 저물고 있다. 앵초가 지면 봄날이 가듯, 누님에 대한 그리움도 엷어질 게다. 꽃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일상 속으로 달려간다. 내년에도 앵초는 돌확 아래서 속살거리며 피어나리라. 가슴을 활짝 열고 유월을 한껏 안는다.
 
약력
▶ 2015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 사단법인 딩아돌하문예원 이사 겸 운영위원장
▶ 청주문화원 이사
▶ 충북국제협력단 친선위원회 위원장
▶ 우암수필문학회 회원
▶ 충북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 청주문인협회 회원
▶ 충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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