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세종시 교육부 전경. / 뉴시스
세종시 교육부 전경. / 뉴시스

공교육의 학교 태동은 100년 남짓으로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식 학교는 문명을 발전시키는 초석이 되었다. 학교의 기능은 국민의 지적 수준을 넘어 사회 체제의 변화도 일으켰다. 그럼에도 학교는 성장과 쇠퇴를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기본역량 진단도 학령인구 감소와 사회변화로 대학이 쇠퇴기에 접어들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수립되면서 사회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제일 먼저 정비한 것이 교육체제이다. 당시 공교육기관으로 서울에는 성균관과 사학(四學), 지방에는 향교를 두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 서원(書院)이라는 사설교육기관을 허가하였다. 이른바 공식적인 사학(私學)의 시작이었다. 서원은 현재의 중등교육기관 이상의 높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후 서원은 국가 지원정책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서원은 숙종, 영조, 흥선 대원군 등을 거치면서 철폐되기 시작한다. 물론 원인과 목적은 조금씩 달랐다. 숙종은 불법적으로 설립된 서원이 남발되자 서원을 철폐하였다. 영조는 서원에 대한 재정지원의 부담감과 서원이 군역도피처로 이용된다는 폐단을 접하고 학생 수 제한과 철폐를 병행하였다. 고종 8년(1871) 대원군은 서원의 면세, 면역, 부정축재, 과도한 권세 등에 벌어지는 각종 비리를 이유로 1,000여 곳의 서원 중 47개만 남기도 모두 철폐하였다. 문을 닫은 서원의 공통점은 불법적 운영과 비리의 온상이었다. 게다가 교육의 질까지 낙제점이었다. 퇴계 이황이 성균관 총장(대사성)이 되었을 때 연설한 취임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취임사의 내용에는 사학의 유생들이 스승 보기를 길가는 나그네로 여기고, 학교를 주막집으로 생각하며, 스승이 들어오면 수업 받을 준비는 고사하고 인사하는 것까지 꺼려했다고 한다. 지금 대학의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 대대적인 서원 철폐를 한 원인이 교육 기관의 비리와 낡아 빠진 교육 수준이 접목되어 취해진 일이라면 지금의 대학도 부정과 비리 앞에서는 과감한 제재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의 대학 구조개혁 정책도 과거와 양상이 다른 것 같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당시에는 서원 증가가 낳은 폐단이 컸다. 그런데 요즘은 학령인구가 꾸준히 감소했지만 대학은 증가된 꼴이 되었다. 당시 서원의 가장 큰 폐단의 하나인 서원 간의 세력 대결이었다. 지금도 서열화 된 대학의 세력이 고착화되어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물론 학교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철폐만이 정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헌에 의하면 대대적인 서원이 철폐된 이후 지방 교육의 부실화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국민의 근대화 교육이 늦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미 흘러버린 역사이므로 다른 가정을 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지금은 학령인구 급감으로 인해 대학이 학생 충원을 하지 못해 대학 경쟁력이 하락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선제적으로 정부가 대학을 구조조정 하겠다는 것이다.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 중부매일 DB
오상영 유원대 경영학과 교수 / 중부매일 DB

대학 구조개혁은 금년에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구조개혁 평가의 명칭은 대학 기본역량 진단으로 바꿨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 시대가 변한 만큼 조선 시대의 서원 철폐 방식보다는 세련되고 합리적인 정책이 시행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지만 부정 및 비리 대학에 대한 제재는 역사 속에서 대대적인 서원을 철폐하였듯이 강력해야 한다. 대학은 공공성이 강화되고 자율성의 확대로 교육의 질이 제고되어야 한다.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것과 대학 부실과는 직접적 연관성을 증명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입학생 부족이 절대적 재원 부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정은 심증이 가능하다. 또한 부정과 비리에 연루된 대학이 대학 교육을 잘 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비리 대학에 대한 강력한 제재 조치는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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