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최고 가게] 2. since 1956 '청미서림'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삼산초등학교 인근에 있는 청미서림 김병회 사장이 아버지 김기홍씨의 사진을 들고 지난 세월을 되새기고 있다. 김 사장은 1956년 어버지가 오픈한 청미서림을 대를 이어 지키고 있다. / 김용수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김병회 사장이 잠깐의 틈을 이용해 책을 읽고 있다. 점점 사라져가는 서점가 풍경속에서 이런 모습이 청미서림을 수십년간 지켜올 수 있었던 이유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신학기에는 밥도 못먹을 정도로 바빴고, 책이 없어서 난리였죠. 서점은 2~5월에 벌은 돈으로 1년을 먹고 살거든요."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에 위치한 '청미서림'은 보은군의 1호 서점이다. 1956년 문을 연 이후 면마다 하나씩 서점이 들어섰지만 지금은 다 사라지고 2개만이 남아있다. 남은 2곳중 한 곳이 청미서림이다. 김병회(57) 사장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96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80년대가 가장 호황이었어요. 당시에는 학생들의 학업 열의가 뜨거웠어요. 전국적으로! 학생들도 많았고 시험도 많았고 책이 귀했죠. 보은군도 한 학년에 50~60명씩 10개반이었으니까."

청미서림 바로 맞은편에는 올해로 개교한지 109년 된 보은삼산초등학교(1909년 개교)가 있다. 삼산초 학생·교사들은 등하굣길에 자주 청미서림을 들려 책을 사갔다. 청미서림 인근에는 52년 된 동광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어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아전과는 한달에 3천권씩 팔았어요. 학생들의 80%는 동아전과를 샀으니까요."
 

김병회 사장이 책을 정리하고 있다. 청미서림은 초등학교 앞이라 일반 책보다는 참고서가 대부분의 책장을 차지하고 있다. / 김용수

62년 세월동안 청미서림의 베스트셀러는 '동아전과'라고 김 사장은 꼽았다. '수학의 정석', '성문기본영어', '맨투맨'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참고서였다고 했다. 청미서림은 주 고객은 학생이다. 참고서 판매 비중이 60~70%다.

"누가 책을 보다가 돈을 꽂아놨는지 그 책을 사간 학생이 "책에 돈이 들어있다"며 갖고 왔더라고요. 거스름돈 몇천원을 더 받았다며 돌려주러 온 여학생도 기억에 남고요. 학생들의 코묻은 돈이지만 순수한 학생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신학기 특수'가 사라진지 10년이 넘었다고 말을 이었다.

"요즘은 학교에서 시험을 안보니까 참고서를 덜 사죠. 초등학교는 아예 시험이 없어요. 학교마다 다 도서관이 있으니까 서점에서 책을 살 필요가 없죠."

인터넷서점도 오프라인 서점의 매출을 끌어내린지 오래다. 학생이 줄고 매출이 줄자 가게운영시간도 줄였다. 아버지 때에는 새벽 6시반에 열어 자정 12시에 닫았는데 지금은 오전 8시에 오픈해 밤 10시에 닫고 있다. 예전에는 명절을 제외하고 연중무휴였다.
 

1956년 4평 가게로 시작한 청미서림은 1973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뒤 1979년 건물을 새로 지어 34평의 규모로 운영하다 현재는 15평의 소박한 책방으로 운영되고 있다. / 김용수

보은군에 처음 서점을 들여놓은 아버지 故 김기홍(2012년 별세)씨는 1956년 인근 4평에서 시작했다. 이후 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79년 건물을 새로 지어 34평으로 넓혔다. 당시 아버지가 서점을, 어머니가 세탁소를 함께 운영했는데 모두 '보은군 1호'였다. 이후 지금의 15평 공간으로 좁혔다.

"아버지도 책을 무척 좋아하셨는데 책을 읽다가 좋은 문구가 있으면 적어놓거나 스크랩해 놓으시고 신문기사도 다 모아놓으셨어요. 아버지 유품정리하면서 보니까 그게 몇 박스더라고요."

아버지의 평생 소원은 책으로 가득한 책방을 갖는 것이었다. 자녀들이 어려서부터 책방에서 뒹굴면서 책과 친해지도록 하는 것이 교육관이었다. 이런 아버지 아래에서 자란 김 사장은 책이 좋았고, 늘 책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학생 때, 책을 많이 읽을 때에는 하루에 한권씩 읽었어요. 책속에 살아있는 활자가 좋아요. 책을 읽는 동안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아요."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게 된 것도 '책이 좋아서'였다. 군 복무후 잠깐씩 가게를 본 것이 계기가 됐다.

"아버지 가게를 물려받고 나서 잘했다는 생각은 했어요. 서점 하시는 분들의 직업병이 관절이 안좋아요. 책이 무거우니까. 아버지도 마른 체형에 몸이 약하셨어요."

1980년 보은읍이 다 잠길 정도로 큰 수해를 입었던 당시, 물에 젖은 책들을 버릴 때에는 속상하다 못해 슬펐다고 회상했다. 지하창고 30평에 빼곡하게 쌓아놓았던 책들이 모두 물에 젖어 트럭 두 대 분량을 내다버렸다. 보상도 받지 못했다.

"가게(1층)에 물이 무릎까지 들어찼었어요. 지하창고에는 책이 꽉 찼었는데 수만권이 몽땅 물에 젖은 거죠. 당시 억 단위 손해를 봤어요. 아버지가 많이 힘들어 하셨어요."
 

책이나 영수증 등에 사용됐던 50년 된 청미서림 고무 직인. / 김용수

62년 역사를 가진 가게에서 가장 오래된 물건은 50년 된 직인이다. 김 사장은 '청미서림' 로고가 새겨져있는 고무 직인을 꺼내놓았다. 책 중에서는 1973년에 출판된 동아학습대백과가 가장 오래 됐다. 당시 판매가격이 3천원.

가게 한 가운데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 앉아서 편하게 책을 보라는 주인장의 배려다. 책 한 권을 더 파는 것보다 사람들이 책과의 시간을 더 갖는 것에 더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책 보려면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감시 아닌 감시를 당하게 되고. 그래서 저는 손님들이 오면 인사는 해도 일부러 안 쳐다봐요. 책 편하게 보시라고."

그가 바라는 모습은 '책방'이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김병회 사장이 잠시 한가한 시간에 책을 읽고 있다. 이런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서점들 사이에서도 청미서림을 지킬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김용수

"'서점'보다 '책방'이 더 정겹고 편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어요. 누구나 와서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주인이 없어도 책을 보고 책값을 치르는 모습을 그려보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을 묻자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게를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아요. 앞으로 봉사를 하고 싶고, 노인복지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푸르고 아름다운 책숲 청미서림(靑美書林)이 62년간 지역에 안겨준 '책 그늘'이 더 넓고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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