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이진순 수필가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을 맞은 4일 청주향교를 찾은 한 시민이 외삼문에 붙은 입춘방을 살펴보고 있다./신동빈
24절기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을 맞은 4일 청주향교를 찾은 한 시민이 외삼문에 붙은 입춘방을 살펴보고 있다. / 신동빈

대숲이 우겨진 숲 사이로 새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른다. 바라만 보아도 평화스러운 환경이다. 청주 향교에서 벌써 3년째 1인 1책 펴내기 수업을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만나는 분들에게 인생을 배운다. 청주 향교에서 펼쳐지는 유교 대학은 역사 공부를 하듯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공자의 사상과 맹자, 순자 사서삼경을 배우고 성인들의 발자취를 더듬는 유생들은 한여름 폭양도 아랑곳 하지 않는 수업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어쩌면 어르신들의 배움의 전당이 이처럼 신선하고 멋진지 근동의 선비들은 청주 향교에 다 모여 계시다. 시대를 잘못 타고나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최선을 다해 자식들 뒷바라지로 청춘을 다 보내고 노구의 몸으로 허기진 배움을 채워 보고자 모이신 어르신들로 보였다. 화기(和氣)필방(筆房) 묵향이 가득한 방안에 화기가 넘치고 좋은 글이 가득하니 서예를 즐기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자신을 가꾸는 모습을 본보기로 삼고 싶다. 살아온 지난날들을 성찰 해보며 순간순간을 알차게 보내시려는 1책 글쓰기 교실 또한 뒤질 새라 80노인들이 글을 쓰시고자 애를 쓰신다. 향교에서 만난 인연은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했다. 교직에서 정년을 하고 치매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 한계를 느껴 요양원으로 보낸 분이 있다. 울적한 마음 달랠 길 없어 향교 글쓰기 교실을 찾아 와보니 누님 같은 어르신들이 모여 글공부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하신다. 살아온 삶을 자서전을 쓰듯 써 책을 두 권이나 만들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의 아낙으로 아이들을 다 시집장가 보내고 그동안 살아온 삶을 반추하며 '그리운 세월'이란 제목으로 책을 내신분이 있는가 하면 전쟁의 소용돌이 속의 야생초처럼 살아온 분이 있다. 순탄치 못한 모진 삶의 이야기를 묻어 두기엔 억울하다고 했다. 책을 꼭 내고 싶다고 찾아온 분이 있었다. 어쩌면 뉴스를 듣다가 시한수를 일기 쓰듯 적어 놓고, 아픈 마음을 낙서하듯 써놓은 일기장이 하나하나 주옥같은 작품으로 변신을 하여 '민들레 같은 삶'이란 책을 엮었다.

이진순 수필가
이진순 수필가

가난에 찌든 환경에 순응하며 살다 보니 얼굴에 살아온 삶이 그대로 보였다. 그러나 책 한권 속에 응어리진 마을을 다 풀어 놓은 것이 힐링이 되었던지 활짝 웃는 모습으로 변했다. 젊은 날 명성이 자자했던 분도 세월을 이길 수 없어 지팡이에 의지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향교 가까이 산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노부부는 어쩌면 그렇게도 멋지시던지 부인이 하고 싶다는 일에 흔쾌히 보호자가 되어 인도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첫날 글쓰기 교실에 오셨을 때 '그날'이란 주제로 글을 써보라 권한 것이 계기가 되어 내 인생 80년이란 책을 만들게 되었다. 그동안 곁에서 지켜보며 살 어름판을 걷는 것 같았다. 저러다 미끄러지면 어쩌나 쓰러지시면 안되는데, 조바심하며 한주도 빠짐없이 동참하셨다.

아들을 못 낳는다는 이유로 4딸을 남겨둔 채 떠나버린 가장을 원망하며 살아온 여인도 있었다. 딸아이들을 모두 성장시켜 대학 교수도 만들고 짝 찾아 둥지를 틀어 다 떠나보내고 민화작가로 활동하는 여인이다. 자신이 그린 작품으로 표지를 만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른다. 노후를 멋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로 책을 펼쳐냈다. 청주시에서 '직지 숲을 거닐다'란 주제로 세계 축제가 10월에 열린다. 그동안 1인 1책 사업은 많은 시민들에게 작가의 길을 열어 주었고, 크고 작은 삶의 트라우마를 치유 하는데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곳곳에서 펼쳐지는 배움의 전당이 있지만 청주 향교에서는 한 낯에도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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