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괴산군민가마솥 / 뉴시스
괴산군민가마솥 / 뉴시스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는 자치단체장의 무리한 욕심이 빚어낸 기념비적인 작품이 있다. 군 예산과 주민성금 5억 원을 넘게 들여 수차례 시행착오 끝에 2005년 7월에 완성된 무게 43.5t에 달하는 초대형 가마솥이다. 당시 군민 4만 명의 밥을 한 번에 지을 수 있는 솥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막상 밥을 제대로 지어본 적이 없다. 지역축제 때 찰옥수수 1만 개 찌는 데에 그쳤다. '세계 최대 가마솥'을 자랑하며 기네스북 등재를 신청했으나 더 큰 호주의 질그릇 때문에 기네스북 등재도 포기했다. 공감할 만한 '스토리'와 명분도 없고 쓸모도 전혀 없는 '초대형 가마솥'으로 괴산군은 주민성금과 예산만 날린 채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았다.

그 초대형 가마솥이 최근 새 단장을 마쳤다. 괴산군은 예산 9천200만원을 들여 샌드위치 철 패널 형태인 이 가마솥 지붕을 한옥 모양의 철 패널로 교체했다고 한다. 전혀 활용가치도 없고 관광객도 미미해 있으나마나한 가마솥을 돋보이게 하기위해 거의 1억 원을 투입해 지붕을 새로 바꾼 것이다. 천덕꾸러기 신세인 가마솥을 원형대로 보존한 것은 군민들의 뜻이다. 괴산군이 작년 6월 군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가마솥을 원형대로 보존해 전시·홍보용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초대형 가마솥은 관광자원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 전시행정과 혈세낭비의 표본으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부끄러운 상징물이다. 하지만 기왕에 완성된 가마솥을 이제 와서 고물로 팔아버리거나 흉물로 방치하는 것 보다는 보존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초대형 가마솥은 지역주민들과 관광객에게 혈세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조형물이다. 특히 지난 2일 취임식을 마친 자치단체장들에겐 교훈이 될 만하다. 지자체 혈세낭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초대형 가마솥에 투입된 비용은 빙산의 일각이다. 자치단체장의 보여주기 식 방만한 행정으로 수십억, 수백억 원의 혈세만 잡아먹는 사례는 부지기수였다. 지방채와 세외수입만 갖고는 공무원 인건비도 못줄만큼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가 선심성 예산을 펑펑 쓰는 사례는 흔하다. 일부 기초자치단체가 10%대의 낮은 재정자립도에 무거운 빛에 짖 눌려 있는 것은 구조적인 환경 탓도 있지만 자치단체장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의견수렴과 절차도 갖추지 않은 채 즉흥적인 발상으로 추진한 사업의 결말이 좋을 수 없다.

올바르고 건전한 지방자치는 지역발전을 앞당기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인다. 하지만 치적 쌓기를 위해 무리한 투자로 재정운영이 부실하면 주민들에게 부담이 된다. 물론 자치단체장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시킬 수도 없다. 이를 감시하고 견제해야할 지방의회와 자치단체장의 잘못된 공약과 무리한 사업에 대해선 직언해야할 공무원들도 일정부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자치단체장, 지방의회, 공무원이 지역의 미래를 위해 책임감을 갖고 소통해야 한다. 그래야 제 2의 '괴산 초대형 가마솥'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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