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한이 깊어 병존할 수 없음

올 봄에 고향의 육촌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구야! 가물어서 큰 걱정여! 포도밭이 바짝 말라버렸어!" 전화기 너머 형님의 모습이 그려졌다.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집안 대소사를 모두 챙기시는 형님! 형님의 가장 중요한 수입원인 포도농사가 어려움에 처했으니 포도밭보다 가슴이 더 타들어갔을 것이다. 며칠 전 형님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 잘지냐? 여기 비가 엄청 왔어! 밭에 들어갈 수가 없어! 어떡해야 되나? 농사짓기 정말 힘드네!" 형님은 할아버님이 아버님에게로, 아버님이 내게로 남겨주신 밭을 맡아 농사를 짓고 계신다. 그냥 땅을 놀리기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형님에게 부탁드렸던 것인데, 미안한 마음에 뭐라 대답할 말이 변변치 않았다. "형님! 방학도 했으니 한 번 내려갈게요. 일도 조금 거들어야지요!" 형님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구! 동생이 뭔 일을 햐! 그냥 며칠 쉬고 가!" 아마도 형님은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인적이 전혀 없는 시골생활에서 사람의 體臭(체취)가 필요하셨나보다.

비가 안 오면 안 와서 걱정. 비가 많이 오면 많이 온다고 걱정. 어쩌면 우리네 인생사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의 끊임없는 선택의 쌍곡선인가 보다. 비만 그런가? 아니다. 인간관계도, 경제적 판단도, 정치적 선택도 대부분 대립적 구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三國志(삼국지)』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赤壁大戰에도 이와 관련된 고사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배득렬 교수
배득렬 교수

東漢(동한) 末年(말년), 曹操(조조)가 10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일거에 孫權(손권)과 劉備(유비)를 소멸시키려고 들었다. 이 때 劉備는 2만의 병력뿐이었고, 孫權의 정예부대도 3만도 되지 않자, 이들이 연합해 曹操에 대항하기로 결정하였다. 東吳(동오)의 大將(대장) 周瑜(주유)는 적군과 아군 쌍방의 우열을 분석한 뒤, 孫權에게 "제게 3만의 군대를 주신다면 曹操를 패퇴시킬 것을 장담하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孫權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면서 격분하여 "나와 曹操는 '서로 양립할 수 없다(勢不兩立)'"라고 소리쳤다. 周瑜가 군대를 이끌고 劉備의 人馬와 힘을 합쳐 赤壁에서 火攻(화공)을 펼쳐 曹操의 군사를 크게 물리치자 魏(위), 蜀(촉), 吳(오) 三國(삼국)이 鼎立(정립)하는 국면이 형성되었다.

孫權과 曹操.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내부를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曹操와 劉備, 劉備와 孫權의 관계 역시 "勢不兩立"의 관계임을 금세 알 수 있다. 劉備는 曹操의 막하에서 함께 있었던 적이 있고, 劉備는 孫權의 여동생과 결혼하지 않았던가? 결국 勢不兩立은 大義名分(대의명분)이나 상황변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비가 안 와서 걱정, 비가 많이 와서 걱정하는 우리 형님이나, 천하의 패권을 쥐겠다고 서로 눈을 부라리던 孫權과 曹操나 별반 다르게 없다. 상황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러니 욕심을 내려놓고, 한번만 더 생각하면 勢不兩立의 갈등은 훨씬 적어질 것이다. 아니 이러한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행복한 인생의 방향타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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