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건 토대 43억원의 가치

제프월 作 '군대는 말한다'

1992년 제프 월의 '죽은 군대는 말한다'는 미술계에 주목을 받았다. 필자는 그의 사진이 미술계 주목받은 이유로 크게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디지털사진의 특징들 중 하나인 '조작(manipul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제프 월이 레퍼런스(reference)로 삼았던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다.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제프 월의 '죽은 군대는 말한다'와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을 비교해 보았다. 그들의 작품들은 한결같이 실제 '사건'들을 토대로 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당시 사건들을 극적으로 표현(연출)해 놓았다. 와이? 제리코는 사건을 극적으로 연출해 당시 프랑스 귀족 사회의 부도덕함과 더 나아가 프랑스 정부의 부패상을 꼬집었다.

그렇다면 제프월은? 제프 월은 제리코의 그림에서 단지 구도나 참혹한 표현만을 참조한 것일 뿐인가? 제프 월이 '죽은 군대는 말한다'를 제작한 1992년은 이미 소련이 붕괴된 다음 해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일명 '소련판 베트남전'으로 불리곤 한다. 왜냐하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적잖은 인명피해를 내고 전비소모를 한 채 물러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판 베트남전'은 1992년 겨울 소련이 해체되는데 일조한 사건으로 간주된다.

1991년 12월 25일 소련의 대통령이자 소련의 지도자였던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소련 지도부를 해체했으며 소련의 핵무기 발사 시스템을 포함한 전권을 러시아의 대통령 보리스 옐친에게 승계했다. 당일 저녁 7시 32분 모스크바 크렘린에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혁명 전 러시아의 국기가 계양되었다.

1991년 12월 26일 소련 최고 소비에트의 '142-Н 선언'으로 소련의 붕괴는 시작되었다. 그 선언문은 소련의 11개 공화국의 독립을 인정하는 독립국가연합(CIS) 수립을 허용하는 안이었다. 혹자는 소련 붕괴의 근본적인 이유로 자유를 억압하는 권위주의 체제와 비효율적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보기도 한다.

물론 소련 체제가 붕괴한 이유는 복합적일 것이다. 소련이 붕괴된 다음 해인 1992년 제프 월은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모티브로 작업했다. 그렇다면 그의 '죽은 군대는 말한다'는 소련 붕괴의 원인들 중 하나로 소련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을 들고자 한 것이 아닐까?

필자는 지난 연재에서 제프 월의 사진 '죽은 군대는 말한다'에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과 퍼포먼스 요소까지 혼합한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그는 사진은 독특하게도 투명 라이트 박스(light box)에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 우리가 흔히 버스정류장에서 볼 수 있는 라이트 박스에 설치된 광고판 말이다. 제프 월은 라이트 박스를 버스정류장의 광고판에서 영감 받았다고 맣하기도 했다.

와이? 왜 제프 월은 사진을 라이트 박스에 설치한 것일까? 관객들에게 자신의 사진작품을 광고 게시판처럼 친숙하게 느끼게 하기 위해서? 물론 그 점도 고려했겠지만 무엇보다 라이트 박스가 사진의 표면에 빛을 고루 분배시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그의 '죽은 군대는 말한다'는 라이트 박스의 빛으로 인해 사진 표면을 밝게 드러낸다. 제프 월은 자신의 사진작품을 '사진도 영화도 그림도 광고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것들 모두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필자가 4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라이트 박스에 설치된 전쟁 장면의 사진 앞에 서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이나 현실의 사건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은 리얼리티를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의 사진작품은 사실과 허구의 혼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테면 그는 리얼리티를 허구 속으로 스며들게 하고, 허구가 리얼리티 속에 정착되게 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의 특성을 도입했다고 말이다. 그 점들이 그의 '죽은 군대는 말한다'를 43억에 달하는 가치로 부여한 것이다. / 독립큐레이터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