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클립아트코리아

태백 석탄박물관 지질관은 온통 돌이다. 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름다움에 놀라고 빛이 황홀해서 마음도 눈부시다. 지질시대를 알 수 있는 암석·광물·화석을 시대별 및 성인별로 전시하여 지질의 구조와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설명문을 읽고 이해하는 건 그 후의 일이고, 눈과 마음은 예쁘고 신기한 돌에 빠져든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것이 다행이다. 보랏빛 수정, 눈에 다 담을 수 없는 크기의 다이아몬드, 초록 눈 에메랄드. 보석 광물의 오묘한 빛은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빛이 있다. 그 숨과 만남은 떨리고 긴장된다.

'호박 속의 모기'는 신생대 화석으로 현미경으로 본다. 건드리면 날아오를 것 같은 모기를 보려고 긴 줄이 섰다. 내 몸에 붙으면 기겁하지만 시·공간을 넘은 모기는 중생대 공룡 알보다 인기가 높다.

기품 있는 암석은 의젓한 사람을 보는듯하다. 현란하지도 않다. 생물의 색은 움직이는 변화가 있다면, 암석은 안으로 모아 두었다가 뿜어내는 힘이 느껴진다.

제2전시실부터는 석탄과 관련되었다. 석탄의 생성, 채굴 및 광산생활관을 보고 체험갱도관이 있는 지하로 들어간다. 채탄 모습과 갱내 작업 광경을 현장감 있게 느낄 수 있다기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잠시 갱이 무너지는 굉음과 함께 엘리베이터가 흔들렸다. 순간이었지만 공포의 전율은 온몸이 아팠다. 위험하고 힘든 석탄 산업도 수입 석탄에 밀려 폐광된다고 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밖을 나오니 저녁 그늘이 짙다. 석탄과 광부들의 고단한 삶이 함께 겹쳐졌다.

석탄박물관에 오기 전 '바람의 언덕'을 갔다. 아직 배추를 심지 않아 밭둑길로 올랐다. 거센 바람에 승용차가 흔들렸다. 굽이굽이 돌 때마다 밭도 함께 흔들리는 듯했다. 모든 밭은 돌뿐이다. 잘못 보았나 싶어 자세히 보고 또 살펴도 돌만 보인다. 그래서일까, 바람이 드센데도 흙이 날아오지 않는다. 돌 사이로 흩어지는 바람, 뭉친 돌로 몰려드는 바람 소리, 돌을 헤집는 기운찬 소리, 모두를 날릴 듯 바람은 모질고, 돌은 고요하다.

돌은 돌을 빛나게 한다. 작고 예쁘지도 않은 것들이 서로 엉키고 함께 붙들며 바람과 맞선다. 어제도 그랬고 그 이전도 바람은 오늘처럼 모질게 흔들었을 것이고 '바람의 언덕' 주인답게 자리를 지킨 돌이다.

바람에는 조금의 틈도 내주지 않는 돌이지만 배추는 사이를 넓혀주고 기운을 돋아주고, 외강내유로 키웠을 것이다. 정리가 잘된 석탄박물관 진열장 돌보다 바람의 언덕 돌이 더 아름다운 것은 돌에서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생각한다. 이후 고랭지 배춧값이 폭등해도 불평하지 않을 것이며 돌에서 생명을 키운 농부의 정성처럼 배추를 귀하게 여길 것이다. 머지않아 초록 물결이 일렁이는 배추밭을 상상한다.

여러 나라에서 주어온 우리 집 돌은 애장품이다. 돌을 보면 내 성격과 취향이 보인다. 모양이며 크기, 색깔이 비슷비슷하다. 돌 하나만 보면 개성 있고 돋보이는데 돌과 섞이면 별반 다르지 않다. 고만고만한 것들이 무너진 성벽처럼 쌓였다.

내 말은 들은 친구가 수필가 B 선생님은 돌에 날짜와 장소를 써놓는다고 한다. 덕분에 몇 개의 돌은 이름을 가졌다. 장소를 기억하는 돌 중 하나는 후지산 화산석으로 구멍이 숭숭 뚫리고 검다. 후지산 가는 길 가로수는 무궁화다. 8월 무궁화 꽃은 절정이었다. 애국가 한 소절이 절로 나왔다. 무력으로 짓밟고 강제로 끌고 간 그 날처럼 돌 몇 개를 내 것 인양 가방에 넣었다. 화산석은 반출이 안 되고 들키면 벌금까지 문다고 말렸지만 한 개는 여러 겹 싸고 감추었다. 마음으로 무궁화 꽃잎도 함께 넣었다. 한동안 돌을 보며 가슴 졸였던 시간을 회상했다.

조영의 수필가
조영의 수필가

흙도 오랫동안 비와 바람으로 뭉쳐지면 돌처럼 단단해진다. 흙이지만 부서지지 않고 돌처럼 단단하지만 흙이다. 차마고도 여행지에서 주어온 것인데 화분 곁에 두었다. 녹색의 돌은 물이 닿으면 투명해진다. 화분에 물 주는 날, 반짝이는 茶빛은 영롱하고 오묘하다. 아무도 닿지 않은 자연의 빛, 돌에서 태고의 빛과 소리를 듣는다.

돌은 바라보는 마음에 따라 변모한다. 윤선도는 벗으로 노래했고 나는 추억이 있어 아낀다. 태백의 돌은 생명을 키우는 어머니고 보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잘못 잡으면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좋은 생각으로 바라보는 시선, 산등성이 돌같이 서로를 빛나게 하는 삶, 생각이 깊어지는 내 마음으로 바람의 언덕 거센 바람이 불어온다.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