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시론] 표언복 전 대전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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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기우(杞憂)라 한다. 앞일에 대한 쓸 데 없는 걱정. 고대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한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하나?'하고 밥먹고 잠자기를 잊은 채 걱정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정말 기우였으면 좋겠다.'나라가 망하면 어디 가 살아야 하나?'하는 걱정 말이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도무지 안심찮아서 하는 말이다. 네 갈래 다섯 갈래 갈리고 찢기어 갈등하고 반목하는 꼴이 꼭 100여 년 전 나라 망할 때의 사정과 다르지 않고, 그런 나라를 에워싼 채 발톱 세우고 으르렁대는 주변 강대국들의 경쟁이 꼭 그 무렵 나라 밖 정세의 판박이인 것만 같은 것이다. 나라가 곧 하늘이라는 사실, 동의하시는가? 깃들여 살며 의지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나라 없이 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왜 안 그럴까. 지금 전 세계가 난민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나라마다 정권 차원의 문제로 커진 지는 오래고, 이제는 국제간 갈등과 분쟁의 단계로까지 심화돼 가고 있다. 제주도에 들어와 있는 예멘인 난민신청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먼 나라 남의 일로만 여겨 온 우리나라도 이에서 예외일 수 없는 처지가 됐다.

난민을 간단한 말로 요약하자면 '나라 없이 떠도는 사람'쯤이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는 상관없이 나라 국민으로 태어난다. 그러나 불행히도 타고난 나라가 망하면 오갈 데 없는 난민 신세로 굴러 떨어지고 만다. 지금의 예멘이나 시리아처럼 국민의 생존권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나라는 있어도 없느니만 못한, 망한 나라다. 무너져 내린 하늘 밑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 없듯이, 나라 잃은 백성이 살 수 있는 길은 없다. 억지로 남의 나라의 자비와 관용에 기대어 사는 삶을 정상적인 인간의 삶이라 할 수는 없다.

고조선 이후 수많은 나라들이 이 땅에 명멸했다. 나라가 망할 때마다 죄 없는 백성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고 노예가 되어 끌려갔다. 조선왕조는 엄청난 희생을 강요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도 정신 못 차리고 갈팡질팡하다 망하고 말았다. 불과 108년 전의 일 아닌가. 5백만 명 이상의 우리 조상들이 난민 신세가 되어 만주, 일본, 연해주, 심지어 멕시코 유카탄 반도까지 떠돌았다. 지금 전 세계에 6천만 명 이상이나 된다는 난민의 처지가 그렇듯이,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의 목숨도 파리 목숨이나 다를 바 없었다. 만주 벌판을 떠돌다 일제의 토벌극에 희생된 우리 조상의 참극을 백암 박은식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각처 촌락의 인가 및 교회, 학교, 양곡 수만 석을 불태우고, 남녀노유를 총으로 죽이고, 매질하여 죽이고, 발로 차서 죽이고, 찢어 죽이고, 생매장하고, 가마에 삶고, 해부하고, 코를 꿰고, 가죽을 벗기고, 사지를 못 박고, 인류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을 오락삼아 하였다."(한국독립운동지혈사)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1920년, 우리들 할아버지 할머니쯤 되는 분들이 겪은 비극이다.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표언복 대전 목원대 국어교육과 교수

마땅히 뇌 속에 묻고 뼈 속에 새겨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일이지만 어느 한 구석 그런 낌새도 보이질 않으니 하늘 무너지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단결된 국민의 힘 이상의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것도 역사의 가르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의 가장 큰 책무는 국민을 통합하는 일. 유사시 누구라도 구국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는 것, 그보다 더 크고 중요한 통치 행위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러면 모든 국민을 보듬어 끌어안고 다독여 달래가며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 지도자 제일의 덕목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좌파와 우파로 나뉘고 보수와 진보로 갈린 심각한 국론 분열 현상이 걱정스럽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좌편향적 경제 정책들이나,'친문'' 진문''뼈문'등의 낯부끄러운 용어들을 양산하고 있는 일련의 인사도 마찬가지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은 여전히 현실적 위협이다. 수시로 존재감을 확인하려 드는 주변 강대국들의 포효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달래고 어르느라 왔다갔다 분주하여 건강까지 해친 대통령의 행보가 가슴 아프고, 남을 겨냥한 북의 장사정포를 옮겨 달라고 비손하고 있는 듯한 소식도 답답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우리만 홀로 불황의 늪 속을 허우적이면서 전망 조차 우울할 뿐인 경제 사정이라니. 좌표도 방향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는 교육 정책은 내일에 대한 희망의 끈도 회의해야 할 처지 아닌가. 기우는 그래도 행복하다. 기우가 현실이 되면 우리는 이제 넘어갈 수 있는 두만강도 압록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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