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 건설땐 인부 도장 하루 백개도 팠었지"
"충주댐 건설땐 인부 도장 하루 백개도 팠었지"
  • 김미정 기자
  • 승인 2018.07.08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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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의 최고 가게] 3. 53년 역사 충주 도장집 '보광사'
53년간 도장을 새겨온 충주시 관아1길 보성사 1대 사장인 박철호씨(72)와 대를 잇고 있는 2대 사장 박영성(45)씨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보광사는 충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집이다. / 김용수
53년간 도장을 새겨온 충주시 관아1길 보광사 1대 사장인 박철호씨(72)와 대를 잇고 있는 2대 사장 박영성(45)씨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보광사는 충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집이다. / 김용수

[중부매일 김미정 기자] 손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선이 하나둘 솟아난다. 조각도의 칼날이 스칠 때마다 자음과 모음이 등장한다. 10분이 채 지났을까. 엄지손톱만한 도장에 이름 석 자가 빼곡하게 새겨졌다.

충북 충주시 관아길(성내동)에서 53년째 손도장을 파고 있는 박철호(72)씨의 손놀림이 노장답다. 충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집 '보광사'는 박철호씨와 그의 아들 박영성(45)씨가 운영하는 대물림 가게다.

"70~80년대에는 하루에 목도장 100개까지 만들었었는데, 오랜만에 해보니까 손이 무뎌져서 잘 안되네요."

53년간 손도장을 파온 그는 요즘은 한달에 1~2건 하기도 어렵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에는 기계보다 내 손이 더 빨랐어요. 5분에 목도장 하나씩 뚝딱 만들어냈으니까. 일이 많을 때가 행복했지. 일이 많아야 행복하지…."
 

보광사 외부 모습 / 김용수

'보광사'는 관아골에서 두번 이사끝에 정착해 지금의 자리에서 40년을 지키고 있다. 관공서가 몰려 있다는 뜻의 관아골은 70~80년대 충주의 최고 번화가였다. 일대에 법원·검찰청을 비롯해 중원군청, 중원군농촌지도소, 충북은행, 한일은행, MBC 등이 몰려있었다.

"여기가 사법서사 골목이었어요. 지금의 법무사 골목. 도장이 많이 필요했었죠. 일대에 도장집이 10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2곳만 남았어요."

1978년 충주댐(85년 완공) 공사를 시작해 한창 건설할 때에는 밤을 새워가며 일했단다. 일이 많았어도 행복했단다.

"70년대 말부터 충주댐 건설할 때에는 인부들 임금 주려면 도장을 팠어야 했었어요. 하루에 30~40개는 기본이고 많을 땐 100개까지 팠지. 충청남·북도 국토관리청이 여기에 있었으니까요."

달콤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얼굴에 미소가 절로 피었다. 글씨와 그림에 남다른 재주가 돋보였던 박 사장은 20살에 충주의 한 인쇄소에 취직했다. 이후 1년간 도장일을 배워 25살에 '보광사' 이름의 간판을 달고 개업했다. 당시 2평의 가게에는 책상 하나, 도장 만드는 나무틀 하나가 전부였다.

"빚 5만원으로 시작했죠. 가게는 조그만해도 '보광사'에 내 인생을 다 묻었으니까 앞만 보고 일했죠."
 

53년간 정성을 다해 고객들의 도장을 새겨온 충주 보광사 박철호 1대 사장이 조각도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도장을 새기고 있다. 요즘은 컴퓨터를 이용해 도장을 새기면서 손도장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 김용수

50평생 도장으로 한 우물을 판 그가 가장 중요하게 꼽는 것은 '글씨를 아는 것'이다. 도장은 글씨가 좌우 반대라서 쉬운 작업이 아니다. 도장은 양각으로 새기지만, 전각은 이름을 음각으로, 호는 양각으로 새긴다. 직인은 양각이다.

도장이 새겨질 면을 사포로 문질러 평평하게 한뒤 머리속으로 도안을 그리고 세상에 하나뿐인 '박철호 체'로 글자를 새기기 시작한다. 제76호 택견 인간문화재 전경화 씨의 사용 인감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도장 일에서 필요한 것은 글씨를 알아야 하고, 글씨를 잘 써야 하고, 세심해야 해요."

박 사장은 짬이 날 때마다 붓을 잡는다. 서예를 쓴 지 어언 50년. 국선 3번 입선, 김생서예대전 초대작가 등 실력도 수준급이다.

"80년대에 군청과 경찰서 표창장, 충주여고·충주여중·충주여상·북여중, 4개 학교 졸업장과 상장을 제가 다 썼었어요. 각종 초대장, 초청장, 인사장, 연하장 등도 제 글씨에 제 그림이었죠. 당시에는 명함도 붓으로 썼는걸요."

충주 보광사, 손도장을 새기는데 사용되는 손때 묻은 도장틀과 조각도. / 김용수

가게 한 가운데에는 평소 그가 쓰는 붓과 한자책, 서예를 써내려간 한지가 여럿 놓여있다. 글을 쓰고, 책을 보면서 도장의 글씨를 연구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손으로 새긴 건 위조를 못하죠. 도장 잘못 찍으면 생사가 왔다갔다하니까."

박 사장은 도장의 가치, 특히 수제 도장의 가치를 강조했다. 도장을 찍는다는 건 그 문서를 책임지겠다는 의미로, 신분증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도장은 과거 부(副)의 상징이기도 했다. 과거에는 코끼리 상아, 수우(물소뿔), 경아(고래뼈)에도 도장을 새겼었고, 90년대에는 벽조목(벼락 맞은 대추나무)이 잡귀를 물리쳐준다는 속설로 부적처럼 유행이었다.

"당시 수공비로만 15만~20만원을 받았었어요. 지금은 손도장 수작업 해도 3만원을 손에 쥐지만…."

전자결재시대, 사인(서명)시대를 거스를 수는 없지만, 손기술이 묻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다 기계로 만드니까 기술이 소용이 없게 되잖아요. 옛것을 다 잊어버리고 사는 게 아쉬워요."

 

충주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집인 보광사의 대를 잇고 있는 박영성 사장이 명함 디자인을 하고 있다. 보광사는 도장은 물론 명함, 광고판촉물을 비롯한 각종 인쇄물을 제작하고 있다. / 김용수

아버지의 손기술을 지키기 위해 장남인 영성씨는 2007년부터 가게를 지키고 있다. 손도장 영역에다 자신의 컴퓨터기술을 접목해 기계도장, 인쇄, 명함, 홍보물 제작 등으로 영역을 넓혔다.

"아버지의 일하는 뒷모습을 보면 원하시는 일을 즐기시는 것 같아 좋아 보였어요. 가게를 물려받길 잘한 것 같아요."(박영성)

영성씨는 대학졸업후 서울에서 기계설계회사에 다니다가 고향인 충주로 내려왔다. 앞으로는 낙관 쪽에 무게중심을 둘 계획이다.

"아버지 밑에서 기술을 더 배워서 낙관쪽을 잘 해보고 싶어요. 낙관이 부가가치가 높으니까요. 5년쯤 뒤에는 저도 혼자서 칼도 만지고 수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박영성)

넓을 '보(普)'에 빛 '광(光)'자를 써서 '도장집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자'는 뜻에서 박철호 사장이 직접 지었다는 '보광사'. 도장집으로 이름을 알렸다면, 이제는 '충북의 최고(最古) 가게'로서 이름을 빛낼 차례다.

53년간 도장을 새겨온 충주시 관아1길 보광사 박철호사장(72)과 대를 잇고 있는 아들 박영성(45)씨가 지금까지 제작했던 도장들이 찍힌 인장본을 보고 있다. / 김용수
보광사의 견본 도장들 / 김용수
53년간 정성을 다해 고객들의 도장을 새겨온 충주 보광사 박철호 1대 사장이 조각도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도장을 새기고 있다. 요즘은 컴퓨터를 이용해 도장을 새기면서 손도장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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