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뜨락] 모임득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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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마음이 허기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릴 적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이 그립다. 산해진미가 그득해도 허허로운 마음이 채워지지 않을 때면 더욱 그러하다. 비 오는 날 화덕에 뒤집혀진 솥뚜껑위로 기름이 쫙 둘러지고 댕강 자른 무로 기름을 퍼지게 할 때의 지지직 소리. 그 솥뚜껑위에 오른 음식은 어떤 부침이어도 맛있을 수밖에 없다. 자박자박 내리는 빗소리. 들기름과 콩기름이 섞인 종지에서 한 수저 떠 올려 두르는 기름소리와 따다닥 불 지피는 소리가 그립다.

일정한 리듬을 타는 소리에 비해 툭탁툭탁 불규칙하게 들리는 소리는 남성이 칼질하는 소리이다. 그러나 젊은 쉐프와는 거리가 멀다. 55세 이상만 배울 수 있는 금빛요리교실이다. 수강생이 덜 찼다는 지인 요리강사의 권유로 참석하고는 적잖이 놀랐다. 머리 희끗희끗한 남자 분들이 절반이나 되었기 때문이다. 은퇴 후 제2막을 준비하며 가족에게 건강한 한 끼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열심이시다.

오늘의 요리는 잡채다. 강사는 당근, 시금치 다듬는 법, 양파 써는 법 등을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설명한다. 요리 고수들을 위한 강습이 아니고 간단한 식재료를 이용해 스스로 한 끼 식사를 챙겨 먹을 수 있게 돕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 그동안 밖에서 돈버는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물며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고추 떨어진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세대가 아니던가. 요리와 담쌓고 살던 사이 세월은 유수처럼 흘러 삼시 세 끼를 챙겨주던 아내도 이제 곁에 없다. 혼자 챙겨 먹는 식사가 다반사지만 상 위의 반찬이 오죽하랴.

수강생 중에 혼자 사시는 분이 계셨단다. 결혼한 아들에게 한 달에 한번 와서 같이 자자고 했다. 며느리가 아들과 오기는 하는데 늘 입이 나와 있단다. 요리강사가 알려준 대로 불고기케밥을 해 놓고 커피를 타서 늦잠 자는 며느리가 깨기를 기다려 말을 했다.

모임득 수필가
모임득 수필가

"며늘아기야 우리 브런치 할까?" 예쁜 그릇에 담긴 케밥과 커피를 보고 놀란 며느리. 그 후 며느리가 올 날이 가까워오면 한 달 동안 배운 요리 중에 먹고 싶은 게 뭐냐고 여쭈어본단다. 시아버지가 해준 맛난 요리를 먹은 며느리는 그날 이후 먼저 전화해서 이번 주는 뭐 배우셨냐고 여쭈어본다고 한다. 정성이 듬뿍 담긴 한 끼 밥상을 받아 본적이 있는가? 그 밥상을 시아버지에게 받았다면 자칫 귀찮을 시댁 나들이가 음식으로 인해 소통이 되고 가족 간의 정이 돈독해지리라. 요리가 가족과 가까워질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독특히 한 셈이다.

준비된 육수로 양파, 파프리카, 느타리버섯들을 볶아내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당면 소고기 볶듯 갖가지 이야기들이 섞여진다. 여러 재료를 한데 섞으니 잡채의 모양새를 갖추면서 맛도 상승효과를 낸다. 잡채를 버무리듯 요리를 통해 사람들과 교감한다. 한 가지 재료로는 잡채 맛을 내지 못하듯이 나 혼자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너와 나, 이웃이 있고 사회가 있는 모듬살이 하는 존재이다. 요리는 소통과 치유이다. 비오는 날 잡채를 만들며 부모님의 소중한 기억 한 움큼 불러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그리움도 한 움큼 담아 잡채 위에 고명으로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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