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청렴한 재상이었던 황희 정승에게 하루는 집안에서 다투던 노비 두명이 찾아와 서로 자기가 옳다고 내주장을 폈다.
 황희는 먼저 상대방의 잘못을 일러바친 한 사람의 말에 [네 말이 옳다] 했고, 다른 종의 말을 들은 다음에는 [네 말도 옳다] 고 맞장구를 쳐서 돌려 보냈다.
 이를 지켜보던 부인이 그의 무소신을 나무라자 [부인 말도 옳소] 라고 했다는 답변은 지금도 널리 회자(膾炙)되고 있다.
 이렇듯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인 세종의 찬란한 업적 뒤에는 항상 그림자 처럼 보필해 온 나이 지긋한 황희정승이 있었다.
 전체를 어우를 포용력이 전제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황희정승 만의 화법이 아닐까 싶어서 모두(冒頭)에 옮겨 본 것이다.
 요즘 TV 광고에는 난데없는 실버(Silver)물결이 넘실대고 있다.
 버거 소녀 버거 총각을 제치고 등단한 버거 할아버지는 물론이거니와, 할머니가 들고 오는 수박을 마치 축구공 인냥, 드리블을 하며 발재간을 뽐내는 할아버지.
 그런가 하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슬로건 아래 배움을 터득하고자 강의실로 향하는 백발이 성성한 노신사의 모습은 중후하고도 세련된 멋을 시청자들에게 안겨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청출어람 청어람]을 외치는 다른 한켠에서 이처럼 [구관이 명관]이요, [묵은 솔이 광솔]이라 외치는 복고풍의 세찬 맞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충북도의 경우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99년 9.1%에서 2000년 9.4%, 2001년 9.7%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전국 평균 노인인구 비중인 7.9%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한 나라의 고령인구가 7%를 넘어서면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노인인구의 증가추세에 비해 아직까지도 이들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 창출은 커녕 복지시설과 요양시설도 크게 부족하다는 소식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노인복지 수요에 거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정책의 개발과 근본적인 인프라의 확충이 한갓 공염불로 끝나서는 안됨을 노인의 날을 맞아 되새김해 본다.
 일전에 어느 자치단체장으로부터 이같은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선거운동을 하러 경로당을 다녀 보면 모두 앉아서 고스톱이나 바둑 장기와 같은 비생산적인 일들만 하고 있어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역시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젊은 층의 일자리도 다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노인복지 정책을 주문하는 것이 낭만적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다.
 그 길목에 있는 고령화 사회의 실버 복지를 등한시 한다면 언젠가 부메랑으로 되돌아 올 수 있다..
 18세기에 조성된 뉴잉글랜드 공동묘지의 한 묘비에 이같은 문구가 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들리니.]
 노년기는 누구에게든 찾아 올 것이 아닌가. jbman@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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