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광섭 컬처디자이너·에세이스트

충북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보은 속리산 법주사.<br>
충북 첫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보은 속리산 법주사.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나선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본질에 가까울수록 아름답다. 미물들이 생명을 불태우는 여름의 숲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볍고 설렌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는 기쁜 소식을 안고 오리숲으로 향하는 여정은 신묘했다. 새로운 시선으로 자연과 사찰의 내밀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이 밀려오는 산사는 적요했다. 숲 속은 으레 고요하고 적막하며 소리 소문 없는 무상무념의 곳이던가. 하물며 숲 속의 사찰은 분위기부터 점잖은 자세니 적막강산일수밖에. 욕망의 오벨리스크를 세우고 허망한 꿈만 쫓던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절로 숙연해지고 인생의 덧없음과 욕망만을 쫓으며 살아온 지난날을 후회하며 엎드려 속죄를 한다.

쓸쓸하고 고적한 순간도 잠시, 갑자기 소리가 무성하다. 산새들이 울고 시냇물이 울고 곤충들이 울고 바람마저 울면 숲속은 온통 울부짓는 소리다. 이 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살아있음의 징표로 수굴~ 수굴~ 소리에 소리가 꼬리를 문다. 번개치고 천둥 비바람이라도 시작되는 날이면 숲은 잔치마당이다. 소리의 아우성 속에서 빛나는 이름 모를 스님의 목탁소리. 마음의 일이란 정처 없고 덧없으니 하산할 때는 번잡한 마음을 비우라 한다.

호서 제일가람 법주사는 신라 진흥완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한 절이다.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이야기 거리도 많다. 불법을 구하러 천축으로 건너간 의신이 그 곳에서 경전을 얻어 귀국한 뒤 속리산으로 들어가 법주사를 창건하였는데,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법주사는 그 자체가 위대한 유산이다. 국보가 3점, 보물이 12점, 지방유형문화재가 22점이나 된다. 신라시대 석등의 백미인 쌍사자석등(국보 5호), 현존하는 유일한 5층목탑인 팔상전(국보 55호), 활짝 핀 연꽃으로 조각된 석연지(국보 64호)가 국보로 지정돼 있다. 또한 사천왕석등, 마애여래의상, 신법천문도병풍, 대웅보전, 원통보전, 법주괘불탱화, 철확, 복천암 학조등곡화상탑 등이 보물이다. 그리고 사천왕문, 석등, 복천암 극락보전 등이 지방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법주사를 재미있게 보는 방법은 여럿 있다. 위대한 유산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엿보고, 그 유산의 비밀을 찾아 나서면 좋겠다. 이왕이면 탬플스테이를 통해 거짓과 욕망으로 얼룩진 자신을 되돌아보며 사색과 치유와 성찰의 시간을 가지면 더욱 좋겠다. 맑고 푸른 그 곳에서 삶의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 않은가.

그리고 사찰에 장식되어 있는 단청을 꼼꼼히 탐구하자. 사찰의 백미는 단청이다. 단청(丹靑)이란 목조건물이나 공예품, 조각품 등에 청·적·황·백·흑 등 다섯가지 색으로 여러 가지 무늬와 그림을 그려 넣어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단청은 건물이나 기물 등이 부식을 방지하고 재질의 조악성(粗惡性)을 은폐하며 종교적인 엄숙미를 준다. 단청은 불교나 유교가 성행하였던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일찍이 유행하였으나, 현재까지 그 전통이 이어지는 곳은 한국뿐이다.

변광섭 에세이스트
변광섭 에세이스트

팔만대장경에 큰 산은 큰 덕이라고 했다. 가볍게 흔들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곧은 자세로 늘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산처럼 살아야 한다. 큰 산은 생명의 기운과 자연의 신비와 드높은 기상과 광활한 대자연의 큰 마음을 갖고 있다. 철철이 새로운 멋과 맛과 향기로움을 준다. 그러니 자만하지 않고 좌절하지 말며 늘 푸른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큰 산처럼 말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니 이곳이 세계인이 즐겨찾는 문화의 보고(寶庫)가 되면 좋겠다. 종교적 성소를 뛰어넘어 예술로, 콘텐츠로, 문화상품으로, 더 나아가 전통문화의 창조와 혁신의 곳간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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