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댐이 막 담수할 무렵인 지난 1983년, 필자는 수몰지구의 마지막 모습을 취재하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한발 앞서 떠나간 남한강 일대의 강마을은 대개 노인들이 남아 손때 묻은 가재도구를 챙겼다.
 족히 수백년 나이를 먹음직한 느티나무 떡판은 너무 무거워 고물상에게 몇천원씩 팔아 넘겼다.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할 수 있나유』 70을 넘긴 할머니의 핏기없는 모습이 지워지질 않는다.
 토지 보상금을 받아 도시나 간척지로 이주를 한 수몰민중에는 운때가 많아 한몫 챙긴 사람도 있지만 도시생활에 적응치 못하거나 사업에 실패한후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경우가 더 많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것은 오직 농사짓는 것 밖에 없는데 고향을 뜬후 생계수단으로 뜬금없이 선택한 장사가 제대로 될리 없는 것이다.
 호수에 물이 찬후 20년이 지났건만 수몰민들은 명절때가 되면 물에 잠긴 수향(水鄕)을 찾아 기억을 더듬고 성묘를 한다. 충주댐, 대청댐 곳곳에 세워진 망향탑은 고향 잃은 사람들의 허탈한 마음을 다소나마 달래준다. 이를 두고 수구초심(首邱初心)이라고 하던가.
 미국같이 큰 땅덩어리를 가진 나라라면, 또 뉴프런티어 정신을 갖고 사는 이동의 문화라면 후버댐이 들어서던 어쩌던 이사가는데 별 문제가 없지만 한반도 작은 땅덩어리에서 농경이라는 정착의 문화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선 대형 댐의 건설은 생태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생활방식을 여지없이 파괴시킨다.
 그래서 댐의 건설이란 단순히 수자원 확보라는 물리학적 변화에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류 문화사의 변화라는 사회학적 측면에서도 십분 고려해볼 사항이다.
 유엔및 환경단체에서 이미 예고했듯 우리는 머지않아 물 부족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당위성의 논리를 충북에서 자꾸 찾으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의 수자원 확보에 충북은 할만치 했다. 칠성댐같은 소규모 댐은 접어두고서라도 대청댐, 충주댐과 같은 거대한 댐을 이미 제공했다. 소백산하와 차령산맥을 굽이쳐 흐르는 무공해 벽계수를 수도권 사람들을 위해 군말 않고 내놓았다.
 대대손손 눌러살던 고향을 떠나면서, 억장이 무너지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두번다시 오지못할 싸립문을 지둘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천을 내놓으라고 하니 이 일을 어쩌랴.
 충북의 신세가 마치 전통설화에 나오는 「떡장수 할머니」가 된 듯 하다. 호랑이의 큰 입에 떡을 달라면 떡을 주고 팔을 달라면 팔을 주고, 줄 것 다주었는데 마지막 남은 몸통마저 내놓란다.
 베니스처럼 충북을 온통 「물의 도시」로 만들 작정인가. 물의 도시로 만들면 전국 제일의 수상관광이 이뤄지고 어쩌고 했는데 신단양 이주에서 보듯 이같은 장밋빛 꿈이 말짱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눈치챘다.
 이제 달천댐 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달천댐은 동강에 맞먹는 생태계의 보고(寶庫)다. 수달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충북의 젖줄이다. 괜시리 달천댐 계획을 내놓아 주민갈등을 야기시키고 이통에 땅값도 하락되었다.
 44개 시민단체가 성명을 냈듯 달천만큼은 그대로 둬야 한다. 행여 그럴리는 없지만 달천댐 계획이 동강댐 백지화의 대안이 될 수도 없다. 산자수려한 괴산의 풍광이 물속에 묻히고 남부여대, 고향을 등지는 실향민의 대열이 또 생겨서는 안된다. lbm@jb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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