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이영희 수필가

사진. / 이영희 제공

가히 절경이다. 감탄사조차 사라지게 하는 카파도키아라고 하더니 딱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수 억 년 전 화산 폭발로 인해 근처 수백 킬로미터까지 형성된 용암층이 영겁의 세월 비바람과 눈보라, 홍수로 깎이고 닳아서 대형 버섯 모양의 기암괴석이 되었다. 풍화로 꼭대기 부분과 아랫부분의 돌이 서로 다른 파샤바 계곡은 신비하고 비장미를 느끼게 했다.

어머니와 같이 왔어야 했는데.

그 대자연이 만든 풍광과 일출을 상공에서 한꺼번에 보고자 이튿날 새벽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라는 열기구 투어를 떠났다. 바람이 불어 한 시간여 기다리다 그냥 돌아오는데 가이드는 알라신이 허락하지 않나 보다고 너스레를 떤다. 12시간이나 되는 비행으로 지루하던 기내에서 어머니가 포기하시기를 잘했다고 하던 생각으로 다시 돌아갔다. 대신 이틀 후 석회층으로 굳어진 희귀한 경관이 목화로 된 성 같다고 파묵칼레라 이름 지어진 상공을 아찔하게 날 수 있었다.

얼마 전 터키가 좋더라는 말씀을 어머니가 하셔서 시작이 된 여행이다. 마침 모임에서 추진하기에 미지의 환상과 가정의 달을 플러스하여 어머니와 같이 떠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당신의 마음을 자식이 헤아린 것에 대해 좋아하시더니, 여권 사진을 찍을 때는 영정 사진 찍느냐고 해서 김을 뺐다. 그때부터 장거리 여행에 대한 노인의 걱정이 하나하나 시작되었다.

다른 곳이 더 멋있다며 계속 망설이던 어머니는 임박해서 결국 취소를 하고 말았다. 연세가 있으시니 혹시 하는 불길한 생각이 났지만 100세 가까이 함께 장수를 하신 외조부모님 기억을 하며 우리만 떠나기로 했다. 걱정을 하면서도 마지막이 될지 모를 여행이라고 추진한 남편한테 미안해서, 불특정 다수를 사랑하는 게 쉽지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게 더 어렵다는 푸념으로 얼버무렸다.

그러니 같이 하지 못하면서도 마음속으로 계속 어머니와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편하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는 어머니의 눈으로 보았고, 힘들거나 장시간 탑승할 때는 어머니의 다리를 생각하며 아무리 건강하셔도 여든이 넘으신 노인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터키 여행 사흘째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다행이라는 안도의 목소리가 후유하고 들려왔다. 터키 여행 중 안탈리아에서 교통사고로 여자 여행객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보신 것이다. 어머니는 가끔 저절로 잘 큰 딸이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이 나이에도 걱정을 끼치는 자식임이 인지되어서 안타까웠다.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답고 청정해서 여행객이 많이 모인다는 해안 도시 안탈리아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터키석을 깔아놓은 것 같이 파란 물에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처음 발을 늘여 놓았던 이스탄불로 다시 돌아오며 인연이랄까 어떤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것을 느꼈다. 이스탄불은 두 가지가 맞닿고 있음을 의미하는 경계(境界)이다. 유럽 대륙과 아시아 대륙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리스 로마 문화와 아시아 문화,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화가 다양하고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절묘하게 담고 있는 공통분모이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특이한 공간이다. 에페스에서는 로마식 건축물인 아르테미스 신전 유적지를 관람했는데, 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돌마바흐체 궁전과 술탄이 거주하던 톱카프 궁전은 오스만 제국의 화려함을 보여 주었다. 온통 푸른색 타일로 장식해 블루 모스크라 불리는 사원에선, 머리를 가리는 히잡과 살을 가리는 차도르를 비치해 놓고 여자는 그것을 입어야 통과할 수 있었다. 들어가 보니 니캅을 써서 눈만 내놓은 여인들이 뒤쪽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 태어났음이 새삼 고마웠다.

이런 도시를 남편과 여행하며 어머니와의 여행을 가정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모르는 섭리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제주도 일출이 제일 아름답다고 하신 것은 선친과의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을 떠올린 것이고, 동남아가 좋다고 하신 것은 다시 같이 할 수 없는 시부모님과 동행한 추억이어서 일 것이다.

내가 대접받기 원하는 대로 상대방을 대하는 황금률보다는, 상대가 바라는 대로 대하라는 백금률을 잊고 자식으로서의 면죄부를 들이민 것은 아니었는지.

가진 것이 너무 많고 풀어야 할 보따리가 너무 많아 양파 같은 나라인 터키, 아널드 토인비가'인류 문명의 살아있는 거대한 옥외 박물관'이라고 표현했던 이스탄불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내에 서광이 비친다.

어둠을 떨치고 바다를 붉게 적시며 떠오르는 태양이, 삶의 안과 밖은 같은 듯 다르니 황금률보다 백금률을 실천하며 살라고 넌지시 알려 준다.

# 약력
▶1998년 '한맥문학'신인상
▶충북수필문학회, 한맥문학회 회원, 청풍문학회 회장 역임
▶충북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칡꽃 향기'
▶중부매일 '수필 & 삶' 집필 중
▶충청북도교육청 방과후학교 지원단장 역임
▶현재 청주시 1인 1책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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