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야기] 김민수 과학칼럼니스트

/ 클립아트코리아
/ 클립아트코리아

영화가 그리는 디스토피아 세계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연이 없다는 것.

어둡고 칙칙한 색감의 도시에서 분열된 사람들은 무언가를 찾으려 애쓰는데요, 그것은 바로 녹색의 유토피아입니다. 유토피아의 첫째 조건은 청록빛으로 물든 자연입니다.

세계는 지금 인간이 만드는 환경 재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기후변화, 미세먼지, 전염병 등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문제들이 산적한 가운데, 미래를 회색빛의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푸르른 유토피아로 만들기 위해서 녹색기술이 절실합니다.

녹색 유토피아를 만드는 친환경 나노 소재로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 '나노 셀룰로오스'입니다. 나노 셀룰로오스는 간단히 말해 나무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를 나노(10억분의 1m)수준으로 분해한 고분자 물질입니다. 나무를 1000분의 1로 자르면 우리가 흔히 보는 목재 칩이 되고 이를 또 1000분의 1로 자르면 펄프가 되고, 이 펄프를 다시 1000분의 1로 쪼개야 나노 셀룰로오스입니다.

나노 셀룰로오스 소재는 철보다 5배나 가볍지만 강도가 높고 열을 가해도 팽창하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어 '꿈의 소재'로 불립니다. 무엇보다 식물에서 원료를 얻기 때문에 친환경적이고 굳이 나무를 베지 않아도 해조류에서도 추출 가능해 산림을 훼손할 걱정도 없습니다.

꿈의 소재, 나노 셀룰로오스의 응용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특히 요새 우리나라가 깊이 고민하는 미세먼지 저감 대책에 나노 셀룰로오스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나노 셀룰로오스 섬유로 만든 필터는 질산염과 인산염, 불산, 황산염 등 음이온을 띠는 오염물을 흡착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초미세먼지(PM2.5, 2.5마이크로미터 이하 크기의 입자)를 구성하는 성분 중 가장 많은 것이 황산염과 질산염입니다. 따라서 나노 셀룰로오스 소재를 도입한다면 영유아부터 노인까지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친환경 미세먼지 필터, 마스크가 나올 것입니다.

모든 시민이 마스크를 쓰고 실내에만 붙박혀 있는 장면도 디스토피아 영화에 등장하는 단골 장면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가 돼 버린 미세먼지를 근본적으로 줄이는 대책도 유토피아를 위한 중요한 녹색 기술입니다.

미세먼지를 구성하는 주요 오염원은 질소산화물(NOx)인데요, 산성비의 원인이기도 한 질소산화물은 대개 화석연료 발전소와 공장, 자동차와 선박에서 배출됩니다. 높은 온도에서 연료가 연소할 때 질소와 산소가 반응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질소산화물을 줄이기 위해 등장한 녹색 나노 기술은 촉매입니다. 질소산화물을 인체에 무해한 질소와 수증기로 환원하는 탈질촉매(SCR)입니다. 촉매란 본인은 바뀌지 않은 채 다른 물질을 바꾸는 중개 물질로, 대개 환원제로 쓰이는 촉매 물질은 바나듐이나 텅스텐, 티타늄입니다. 이들은 매장량이 많지 않아 비싸기 때문에 촉매를 사용하는 것이 부담이 됩니다.

생산기술연구원의 울산지역본부 김홍대 선임연구원은 마이크로 크기의 기존 촉매를 나노 크기로 줄여 탈질촉매의 경제적 효율을 크게 개선했습니다. 게다가 흑연에서 추출한 '그래핀'이라는 소재에 나노 크기로 줄인 텅스텐과 바나듐을 골고루 분산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촉매 자체의 양이 적어도 기존보다 더 효율적으로 반응하며 강도도 높습니다. 그 결과 동일한 조건에서 사용하는 촉매의 가격을 크게 낮춰 촉매 활용의 부담을 덜었습니다.

디스토피아 영화는 기술이 인간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것이라고 예견하지만 이제 인류는 인간 활동이 가져오는 파괴력을 조금씩 인지하고 있습니다. 미래가 회색빛일지 녹색빛일지는 그 경각심을 교훈으로 삼아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 어둠을 밝히고 있는 나노기술의 발전을 기대해봅시다. /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미래과학연구원 제공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