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6월 17일 밤 미국의 워싱턴 워터게이트 호텔 6층 사무실.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대통령 선거본부가 설치된 이곳에 5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침입을 시도한다.
 훗날 미국의 대통령 닉슨을 낙마케 한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사건은 이렇게 시작된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는 절도범의 수첩에 적힌 전직 중앙정보부(CIA) 요원의 이름을 단서로 사건을 추적한 끝에 리처드 닉슨 재선위원회가 민주당 선거본부를 도청하려 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를 폭로한다.
 재선에 성공한 닉슨은 이를 은폐하려 하나 속속들이 드러나는 진실 앞에 결국은 무릎을 꿇고 그로부터 2년여 뒤인 74년 8월 마침내 사임하기에 이른다.
 "누군가 나의 전화통화 내용을 모두 엿듣고 있다면."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국가정보원의 도청 의혹 사실을 폭로한 이후 도청에 대한 두려움이 사회에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다.
 얼마전에는 한나라당 대선주자인 이회창 후보가 도청을 우려, 휴대폰을 여러개 갖고 다닌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실제로 이후보는 지난 18일 과학기술단체가 초청한 한 토론회 석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휴대폰이나 가장 겁나는 것도 휴대폰"이라고 실토, 이같은 사실을 뒷받침했다.
 이후보는 수행비서의 휴대폰 외에 모두 4개 가량을 사용하며 전화번호도 수시로 바꿨고, 최근에는 비화기칩이 장착돼 도청과 감청을 원천 차단하는 휴대폰도 따로 입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치권 만큼 비밀보장이 요구되는 직업인들도 도청 탐지기 구입과 함께 휴대폰을 2개 이상 갖고 다니면서도 만일에 있을 도청에 불안해 하고 있다.
 청계천 전자상가에 따르면 21만원대의 고가 도청 탐지기를 사는 사람과 구입문의 전화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도청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 때문에 수시로 휴대폰과 전화번호를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다.
 심지어 경찰도 가급적 중요 정보는 일반전화 보다 도청이 힘든 휴대폰으로 보고한다고 실토할 정도다.
 검.경 등 사법당국은 범죄 예방.확인을 위해 법원의 허가를 득한 경우에 한해 감청을 허용하고, 관계기관 역시 도청은 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고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으나 국민들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지난 28일 국가정보원의 도청 의혹 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했다.
 서울지검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국가정보원의 도청 의혹을 잇따라 폭로한 것과 관련, 참여연대가 국정원장과 국정원 도청 담당 직원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30일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사적인 전화를 엿듣는 행위는 범죄행위다.
 이는 내부적으로 국익을 위한 도청의 [필요악]을 운운하기에 앞서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중대 사안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를 갖지 못한 사람은 가진 자의 노예로 전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은 이같은 가능성을 예측하고 경고한 소설로 유명하다.
 정부는 도청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이를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한다. jbman@jb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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