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편의점 시대
빛바랜 편의점 시대
  • 박상준 기자
  • 승인 2018.07.15 15: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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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편의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30년이 된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대한민국 최초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에 고객들이 물건을 사서 나오고 있다. 2018.05.02. / 뉴시스
편의점이 우리나라에 들어온지 30년이 된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대한민국 최초 편의점인 세븐일레븐 올림픽점에 고객들이 물건을 사서 나오고 있다. 2018.05.02. / 뉴시스

후루쿠라 게이코. 36살 노처녀다. 모태솔로에 대학 졸업 후 취직 한 번 못 해보고 18년째 같은 편의점에서 일하는 '루저'다. 수시로 바뀌는 알바생들을 배웅하면서 여덟 번째 점장과 일하고 있는 게이코는 매일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고 정해진 매뉴얼대로 정리된 편의점 풍경과 "어서 오십시오!"라는 구호에서 마음의 평안과 정체성을 얻는다. 게이코는 동네 편의점에서도 만날법한 여성이지만 실은 2016년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소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이다. 소설보다 더 화제를 모은 것은 저자 무라타 사야카다, 그 역시 18년간 편의점 알바로 일하다가서 편의점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 그는 시상식 날도 "알바 끝나고 왔다"고 말해 사람들을 웃겼다.

일본은 편의점 왕국이다. 2017년 기준 점포수가 5만5000곳을 넘어섰다. 편의점은 맞벌이 부부·독신자 등 비교적 목적구매 성향이 두드러진 고객을 겨냥해 1927년 미국에서 시작됐지만 땅덩어리가 넒은 미국보다 도시에 인구가 밀집된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 20년 장기 불황에 전통적인 유통체인인 슈퍼마켓과 백화점이 맥을 추지 못했다. 하지만 편의점은 핵가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큰 수혜를 입었다. 현금인출기가 설치되고 공과금과 택배도 처리해주면서 일본인들에겐 생활의 일부가 됐다.

우리나라엔 1989년 중반 도입됐다. 초기엔 재래시장과 구멍가게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했다. 롯데쇼핑이 1982년 11월 23일 서울 약수동 약수시장 앞에 '롯데세븐' 1호점을 개점한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편의점이다. 이후 3호점까지 열었으나, 채 2년도 안돼 손을 들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이후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하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92년 대박을 쳤던 드라마 '질투'가 편의점 성장에 기폭제가 됐다고 한다. 톱스타 최수종과 최진실이 극중에서 컵라면과 김밥을 먹으며 사랑을 속삭였던 곳이 바로 편의점이었다.

2천년대 들어 편의점 시장은 가파르게 커졌다. 씨유, 지에스25, 세븐일레븐, 미니스톱, 이마트24등 주요 편의점 5개사만 3만5천개가 넘는다. 인구 1천500명당 1개꼴이다. 인구 2천명당 1개꼴인 일본과 대만보다 많다.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이 급팽창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인구 트렌드가 변했기 때문이다. 1인가구가 27.1%에 달하면서 가정간편식, 소용량제품 판매, 택배대신받기 등 맞춤형 서비스가 먹혀들었다. 또 창업비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공정거래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브랜드별 창업조건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평균 창업비용은 4천542만원이었다.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박상준 논설실장·대기자

하지만 편의점 전성시대도 저물고 있다. 일본도 소매업종의 팽창이 불가능한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더 심하다. 일본은 고객감소가 결정적이지만 우리나라는 2020년 최저시급 1만원 시대가 도래하기도 전에 편의점업계에 빙하기가 찾아왔다. 알바비 보다 창업밑천을 댄 편의점주 소득이 더 적은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죽하면 장외투쟁까지 선언했을까. '편의점 인간'을 쓴 무라타 사야카가 우리나라에서 알바를 했다면 언제 잘릴까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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