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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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부매일
  • 승인 2018.07.16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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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뜨락] 김민정 수필가
/ 클립아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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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아침,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소낙비를 퍼 부울 듯 뿌옇게 내려앉았다. 흐린 날씨 탓도 있었지만 전날 밤 꿈자리가 뒤숭숭한 탓에 마음이 불안했다. 전날과 같은 꿈을 꾼 다음 날에는 공교롭게도 액땜을 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예지몽의 불편한 진실은 나를 괴롭히며 따라다녔다. 불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려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그런데, 오전 11시 무렵, 휴대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떴다. "00 빌라 주인 되시지요? 경찰입니다. 어르신 한분이 살고 계시지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하자, 신고가 들어왔는데 그 어르신이 벌써 닷새째 소식도 없고, 휴대폰도 꺼져 있으니 빨리 와서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허겁지겁 빌라에 도착하니 119 구조대원, 경찰, 어르신의 지인들과 주민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빨리 문을 열어 보라는 재촉에 마음은 다급해 지고 가슴은 두방망이질했다. 도저히 내손으로 문을 열기가 무서웠다. 열쇠를 경찰에게 건넸다. 간혹 뉴스에서 보도되는 고독사가 일어난 건 아닌지 온통 불길한 예감이 점점 다가왔다. 그렇잖아도 칠순을 넘긴 어르신이 혼자서 거주 하실 때부터 염려가 되었다. 빌라에 거주한지도 6년이 넘어서도록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으나 그런대로 별 탈 없이 지내시더니 덜컥 이런 사단이 난 것이다.

열쇠를 꽂자 문이 열리지 않았다. 안에서 문고리로 잠근 모양이었다. 빌라 뒤로 돌아가 창문 안을 들여다보니 방안에 불빛이 보였다. 분명히 방안에 어르신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방범창을 뜯어내고 구조대원이 들어갔다. 아뿔사! 아수라장이 된 방안에는 다리에 상처투성인 노인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구조대원들이 한참을 응급처치를 하자 간신히 의식이 돌아왔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루만 더 지체되었더라도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에 머리칼이 쭈뼛쭈뼛 해져왔다. 얼마 후 수심에 가득 찬 얼굴로 그의 아내가 도착했다. 노인이 혼자 몸으로 빌라에 입주 할 때부터 이미 이혼 한 상태였다고 했다. 그녀는 그래도 애들 아버지라는 이유로 구급차에 동행해주었다. "쯔쯧.. 저 양반이 저래 뵈도 00 대학 출신인데다가 젊어서는 잘나가는 사업가였는데, 혈혈단신 단칸방에서 왜 저 꼴로 사는지 ....." 지인 모두는 안타까움에 혀를 끌끌 찼다.

병원에서는 뜻밖에 어르신이 심각한 뇌출혈이 왔다고 했다. 당장 수술에 들어가야만 했다. 병원에 혼자 누워있는 참혹한 모습을 보니 '가는 실이 꼬이고 꼬여 굵은 밧줄이 되는 게 부부관계'라 했거늘 너무 꼬다 보니 아예 끊어져버린 황혼이혼의 현주소를 보는 듯 했다. 노인은 지난날 화려함을 모두 잃어버린 민둥산을 술과 탄식으로 채우려 했던 건 아닐까,

김민정 수필가
김민정 수필가

빌라의 전세금마저 아내 명의로 살아야만 했던 만큼 큰 잘못은 무엇이었을까, 서글픈 노년의 박탈감과 상실감은 방충만 사이로 보이는 흐릿한 전경 같은 답답하기만 했다. 노인은 6년 전부터 어디에도 없는 안식의 이정표를 찾아 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의 영혼을 어루만져 줄 이 없는 고독한 현실이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 필요한 건 아내의 손길이다. 지난날 마음을 다해 살아왔던 시간을 보듬어주며 모든 걸 용서하고 다시 시작되는 황혼 길에 길동무가 되어주길 바랄뿐이다. 이 악몽 같은 이 시간이 어서 지나고 노년의 아름다운 날들이 길몽으로 다가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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