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쳐 만들어 낸 절경…풍류 즐긴 봉황대 이름만 남아
중타리서 북쪽 이식리 흘러 내북면 닿아 흑천 아우르고
달천 낀 100m 절벽 '청벽산' 미원면서 감천·미원천 감싸

봉황리를 흐르는 달천.
봉황리를 흐르는 달천.

#산외면, 내북면, 미원면 경계를 흘러가는 달천

길탕리에서 중티리로 흘러가는 달천은 한남금북정맥에 막혀 다시 방향을 북쪽으로 튼다. 중티리는 굽이치는 하천의 안쪽에 있는 마을로, 양지말, 아랫말, 웃말의 세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에 길탕재, 서쪽에 적음재 사이 중간에 있는 고개마을이어서 중티리(中峙里)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마을유래비에 의하면 마을의 역사가 400년이 넘었다. 남서쪽에 시루산(480m)이 있고, 북쪽에 310m 봉우리가 있다.

중티리를 지나 달천은 북쪽 이식리로 흘러간다. 달천을 사이에 두고 산외면 중티리와 이식리는 내북면 적음리와 성암리와 행정구역을 달리한다. 적음리와 성암리는 달천의 지류인 흑천과 달천 본류 사이에 위치한다. 이식리는 달천 동쪽에 있는 농경지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이식리는 옛날 배가 드나들며 쉬던 포구여서 배쉰개 또는 주식포(舟息浦)라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배(舟)를 배(梨)로 잘못 표기하면서 이식리가 되었다. 이처럼 순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많은 오류가 생겨났다. 이식리는 현재 양지말(배진개), 새말, 밤소의 세 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식리 84번지에는 과거 이식초등학교가 있었다. 1954년 개교해 1996년 분교로 격하되었다가 1999년 폐교되었다. 그 후 대안학교, 아시아·아프리카 농업기술학교로 활용되었으나, 현재는 새로운 활용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식리를 지나는 달천 상류에 이식교가 있고, 하류에 이식2교가 있다. 이식교는 산외면과 내북면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로 1983~84년에 만들어졌다. 이식교 아래에서는 준설직업이 한창이다. 다리 근처에는 이식2리 마을회관이 있다. 이식2교는 이식리와 내북면 성암리를 연결하는 다리다. 다리의 길이가 112m고 폭은 9m다. 이식2교에서는 달천이 상당히 길게 조망된다. 달천 서쪽으로는 19번 국도가 지나간다.

 

봉황리에서 바라본 청벽산.
봉황리에서 바라본 청벽산.

#달천은 내북면에 이르러 흑천을 아우른다

이식2교를 건너면 길은 내북면 성암리로 이어진다. 성암리에서는 달천이 흑천을 아우른 다음 봉황리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성암리와 봉황리에는 하천주변으로 농토가 넓게 발달해 있다. 달천의 지류인 흑천은 해발 602m봉 염둔리 아래에서 시작 화전리, 창리를 거쳐 성암리에 이르게 된다. 길이가 10㎞도 안 되는 짧은 하천이지만, 한남금북정맥 북쪽 내북면을 관통해 흐른다.

흑천은 내북면 소재지인 창리를 지나간다. 창리는 옛날 청산현 주성면소재지로 20칸짜리 창고가 있어 창말 또는 창리로 불리게 되었다. 내북면소재지는 원래 이원리에 있었으나 1984년 창리로 이전되었다. 그것은 창리의 교통여건이 더 좋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창리에는 창말 외에 역골(엽동)이 있어 작은 역으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성암리는 마을 뒤에 영험하고 성스러운 바위가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성암리는 바우밑, 잣나무골, 장승배기의 세 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40가구 120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큰 마을이다. 마을에는 보은의 집, 성암안식원 같은 복지시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세거성씨로는 잣나무골 전주이씨와 장승배기 경주김씨가 있다.
 

폐교된 이식초등학교.
폐교된 이식초등학교.

#봉황대와 인풍정은 마을 이름에 남아 있다

달천은 봉황리에서 크게 한번 굽이치며 절경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달천을 끼고 우뚝 솟은 청벽산(靑壁山) 때문이다. 청벽산의 푸른색 절벽은 100m가 넘는다. 청벽산에 봉황 한 쌍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이름이 봉황리로 바뀌게 되었다. 봉황리의 원 이름은 모래벌이다. 물이 마을을 휘감아 돌면서 모래가 쌓이고 그것이 높아져 마을이 형성될 수 있었다.

달천이 굽이치며 만들어진 모래톱이 농토가 되고 그 뒤 구릉쪽으로 마을이 위치했을 것이다. 그리고 달천을 바라보며 청벽산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봉황대를 만들어 풍류를 즐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세월의 흐름 속에서 봉황대는 사라지고, 그 이름만 남아 전해지고 있다. 달천은 청벽산 쪽으로 깊은 소를 이루는데, 이것을 주민들은 호룡소(虎龍沼)라 부른다. 청벽산에는 두 개의 굴이 있으며, 이 때문에 이 바위를 굴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봉황리에서 달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인풍정교가 나온다. 이 다리는 봉황리와 운암리 인풍정 마을을 연결하기 위해 1999년 놓였다. 길이가 101m 폭 6m로 옥화자연휴양림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운암리는 달천을 따라 상류에 대전 마을이 있고 하류에 인풍정 마을이 있다. 인풍정 마을은 미원천이 달천과 합류하는 지점이어서 주변에 큰 들이 있다. 또 미원천에는 인풍정과 송호(松湖) 마을을 연결하는 두 개의 다리 운암교가 놓여 있다.

운암교 건너편 송호 마을에는 관란정(觀瀾亭)이 있는데, 이곳이 인풍정(引風亭)과 함께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로 여겨진다. 그것은 인풍정과 송호가 달천과 미원천이 합류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관란은 흘러가는 잔잔한 물결을 관찰한다는 뜻이고, 인풍은 바람 또는 풍류를 불러들인다는 뜻이다. 옥화구곡 중 인풍정을 노래한 시 한수를 살펴보자.

 

팔곡이라 탁 트인 인풍정에서                    八曲豁然引風亭
바라보니 가로놓인 다리 돌빛이 푸르네.       望裏橫橋石色靑
상쾌한 바람 속 시원해 돌아갈 맘 없는데     飄灑胸襟渾忘返
물새 산새 지저귀는 소리 귓전에 요란하네.  渚禽林鳥亂人聽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인 관란정.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던 장소인 관란정.

#낭성면에서 발원한 감천과 미원면의 미원천

달천은 미원면에 이르러 감천과 미원천을 아우른다. 감천은 낭성면 삼산리에서 발원해 미원면 성대리에서 미원천과 합류한다. 감천은 청주에 있는 상령산(491m) 아래 상당산성에서 발원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쉽다. 미원천은 미원면 대신리에서 발원해 미원면소재지를 지나 운암리에서 달천과 합류한다. 이들 두 하천은 한남금북정맥의 동남쪽으로 흘러 달천을 거쳐 한강수계로 흘러간다.

감천(甘川)은 단내를 뜻으로 표기한 한자어다. 그러므로 달천과 어원이 같다고 볼 수 있다. 감천은 낭성면소재지인 이목리를 지나 호정리에서 인경천을 아우른다. 인경천은 인경산(582m) 서쪽에서 발원해 인경리, 문박리를 지나 호정리로 흘러간다. 호정리라는 마을 이름은 호연지기를 키우는 정자라는 뜻을 지닌 호연정(浩然亭)에서 나왔다. 감천은 호정리, 관정리를 지나 미원면 성대리로 흘러간다.

미원천은 인경산 동북쪽 구녀산(484m) 남쪽에서 발원해 대신리 용곡리로 흘러간다. 1984년 용곡리 주막거리 위에 보를 막아 용곡저수지가 처음 만들어졌다. 그 후 2010년 둑 높이기 사업이 시작되어 2012년 12월말 완료되었다. 그 결과 길이 182m 높이 18m의 용곡저수지가 완공되어 181만㎥의 용수를 저장할 수 있게 되었다. 용곡저수지는 농업용수 공급과 홍수방지 기능을 한다.

미원천은 내산리에 이르러 중리에서 발원하는 중리천을 아우른다. 중리천은 안산(425m)에서 발원해 중리저수지를 지난 다음 충북에너지고등학교 앞에서 미원천에 합류된다. 미원천의 길이는 10㎞이다. 미원천 하류 동쪽에는 미동산(558m)이 있고, 그곳에 미동산수목원과 충북산림환경연구소가 있다. / 이상기 충북학연구소 객원연구원, 중심고을연구원장, 문학박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중부매일 - 충청권 대표 뉴스 플랫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